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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묘 위치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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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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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함평군

    명당 쓰고 주인딸 얻은 머슴
    옛날에 어떤 머슴이 땅을 파고 있었다. 두 풍수가가 왜 그곳에 무덤을 쓰느냐고 물었다. 머슴은 ‘섣달 그믐날에 장가가는 곳’이라고 해서 무덤을 쓴다고 한다. 풍수가는 그곳은 장가가는 곳이 아닌 죽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묘를 지금보다 위에 쓰라고 알려준다. 섣달 그믐날 저녁에 주인집 딸과 머슴이 동침을 한다. 처녀 아버지는 가문의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두 사람을 죽이려하지만 처녀의 친척 중 한 사람이 머슴과 처녀의 관계를 동네방네에 떠들고 다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결혼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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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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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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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빛낸 충장공 남이흥 장군

    출처 :충청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충남 >당진시

    조선을 빛낸 충장공 남이흥 장군
    남이흥 장군의 업적과 명성을 재조명하고자 일대기를 그려낸 만화이다. 충남 당진의 위인인 남이흥 장군은 정묘호란 때 안주성의 방위를 맡아 후금 3만 대군과 싸우다가 열세에 몰리자 적들을 성안으로 유인하여 화약고에 불을 붙여 적군과 함께 자폭 순절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국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은 정묘호란
    조선은 인조가 집권한 이후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웠고, 후금에서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주전론자인 태종이 즉위하였다. 또한, 후금은 명과의 전투 때문에 심한 물자 부족 현상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여 명을 공격하기에 앞서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에 후금군은 조선을 침략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나 후방을 공격당할 염려에 조선과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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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의병장으로 순절한 박언배와 그의 부인 정려 곡성충렬문
    곡성충렬문(谷城忠烈門)은 1974년 9월 전라남도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삼오리이다. 앞면 3칸과 옆면 1칸으로 된 정려각이다. 주인공은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박언배와 그의 부인 완산이씨이다. 이 정려각은 1805년(순조 5)에 박언배의 공을 인정하여 동몽교관 조봉대부를 증직하면서 정려를 내려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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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서구

    대전 유림을 대표하는 권득기와 권시의 도산서원 사적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에는 도산서원 사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 선생과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權諰, 1604~1672) 선생을 제향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692년 대전의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711년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이후 흥선대원군 재위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안동권씨 종중에 의해 복원 및 증축되었다. 도산서원 사적비는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글을 짓고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도산서원의 건립 배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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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명나라의 멸망 이후 유학의 신념을 담은 괴산 만동묘정비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화양서원(華陽書院)에는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준 명의 신정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의 비석이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 유가의 문명을 보존하려는 의도 아래 화양서원과 만동묘(萬東廟)를 건립한 정황을 알리고 있다. 특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사후, 그의 수제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선생에 의해 만동묘가 수립된 과정과 제향 경위 등에 대해 고증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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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제주 오현을 칭송하는 귤림서원 묘정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1동에 위치한 귤림서원(橘林書院)에는 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묘정비가 건립되어 있다. 귤림서원은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하였거나 유배를 온 다섯 명의 어진 선비를 배향한 서원이다. 배향한 인물은 최초 1578년 김정(金淨)을 시작으로 정온(鄭蘊), 김상헌(金尙憲), 송인수(宋麟壽), 송시열(宋時烈) 등이다. 귤림서원 묘정비는 이들 어진 선비의 덕업과 문명(文名)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1850년 제주목사인 장인식(張寅植)이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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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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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완도군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의 초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서는 초분을 초빈이라고 불렀다. 초빈이라고 부른 것은 초분을 빈소의 연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청산도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작지 주변에 자리를 마련하며, 짐승들로부터의 피해를 막기 위해 울타리를 만들어 둔다. 보통 3년, 길게는 10년 후 수습하여 장지로 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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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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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을묘왜란 의병장 양달사를 기리는 전남 영암 양달사 공적비와 장독샘 유래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는 장독샘 터가 있다. 그 왼쪽으로 양달사 공적비와 장독샘 유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양달사는 1555년 을묘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물리쳐 영암성을 지켜냈다. 그러나 어머니 상중이라는 이유로 전쟁의 공적을 관군에게 돌려 잊혔다가 세상을 뜬 후에 그 공적이 알려져 공적비가 세워졌다. 장독샘 유래비는 양달사가 깃발을 내리친 곳에서 샘이 솟아나 군사들이 갈증을 해소했다는 장독샘의 유래를 전하는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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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공원으로 변화하고 있는 공동묘지
    공동묘지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을 집단으로 묻은 공간을 말한다. 선사시대부터 마을 인근에 공동으로 사람을 묻는 장소가 있었지만, 제도적으로 공동묘지가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였다. 공동묘지는 점차 공원화되어 현재는 추모공원의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공원화가 진행되면서 묘지의 형태는 전통적인 원형 봉분 대신 사각형의 평분으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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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진천군

    백자에 기록한 평산신씨의 가계, 신화국 백자청화 묘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있는 노은영당에는 신화국 백자청화 묘지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화국(申華國)의 행적을 백자에 푸른 글씨로 기록한 것이다. 신화국은 명종 1년인 1546년 증광시에 합격하였지만 관료 생활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크게 현달하였다. 신잡, 신립, 구사맹 등이 그의 가계 후손들이다. 신화국 묘지는 평산 신씨의 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드물게 백자에 행적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지역의 민속문화재로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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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이괄(李适)의 아버지 묘(墓) 전설
    이괄은 어려서부터 청개구리처럼 무엇이든지 반대로 행동한다. 이괄의 아버지는 풍수에 밝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이괄이기에 자신을 반대로 묻을 줄 알고 아무 곳에 묻을 때 바르게 묻으라고 한다. 그 묏자리는 거꾸로 묻어야 발복하는 자리이다. 이괄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 부친의 유언대로 바로 묻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반만 용이 된다. 그래서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실패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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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예산군

    산신령과 묘자리
    옛날이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총각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해 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백 일째 되는 날, 산신령이 나타나서 총각에게 명당을 잡아주면서 ‘백마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마라.’는 금기를 제시한다. 총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고 산신령이 잡아준 묏자리에 하관하려는데, 외삼촌이 나타나 방해한다. 외삼촌의 말에 귀를 기울인 총각은 결국 명당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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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죽은 아들에게서 손자 보는 묘자리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나이 사십이 되어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 죽었다. 아버지가 지관에게 아들의 묫자리를 부탁하자 지관은 죽은 아들에게서 손자를 본다는 곳에 묘를 쓰게 한다. 이듬해 어떤 처녀가 소나기를 만나 묘막으로 들어가 피하다가 꿈을 꾸고, 그 이후부터 처녀에게 태기가 있다. 그래서 처녀는 아들을 낳고, 죽은 총각의 집에서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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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속초시

    아버지 묘를 파헤쳐 학이 날아간 속초 노학동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蘆鶴洞)과 학사평(鶴沙坪) 그리고 양양의 학포리(鶴浦里)가 생긴 지명유래이다. 친구 셋이서 사냥을 하러 갔다가 눈이 없는 곳을 발견하고 명당임을 알았다. 누구든 먼저 죽는 사람이 거기에 묻히기로 했다. 산 주인이 먼저 죽어 묻혔고, 자식들은 차츰 가산이 좋아졌다. 그러나 딸들은 팔자가 드세 과부가 되었다. 이에 딸들이 아버지 묘를 잘못 써서 그렇다고 해서 파묘를 했는데, 그곳에서 학 두 마리가 날아갔다. 한 마리는 학사평에 가서 앉고 한 마리는 학포리에 가서 앉았다. 조학동은 노동(蘆洞)이라는 마을 명과 학사평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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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앉은뱅이 초분이 많은 전라남도 영광군 송이도의 촐분
    전라남도 영광군 낙원면의 대표적인 섬인 송이도에는 12개의 초분이 남아있다. 송이도에서는 초분을 '촐분'이라고 부른다. 송이도 초분의 특이한 점은 앉은뱅이 초분이 많다는 것. 이 초분들은 원래 매장을 했다가 집안에 우환이 생겨 파묘를 한 후 유골을 수습해 다시 초분을 만든 경우이다. 그 외의 초분들은 정월에 죽은 경우거나 이장할 때 낙근(살점이 떨어짐) 상태가 좋지 못하면 초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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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정여립 집안의 묘자리 싸움
    정여립 집안에서 외갓집인 최씨네 집안에 묘자리를 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묘자리가 좋아서 뺏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묘자리를 뺏기 위해 상석에 윷판을 그리고 윷놀이를 했다. 그러나 결국 정여립 집안은 묘자리를 뻇지 못하고 최씨네 집안이 묘자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최씨네 집안은 파묘를 해서 지금은 묘자리만 남아 있지만, 실제로 상석에는 윷판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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