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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불행하게 죽었으나 정통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
    정여창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호는 일두(一蠹)이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무오사화로 인하여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었으며, 갑자사화로 인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 :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처형하는 극형)의 잔혹한 형벌을 당했다. 그는 이 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학문적으로는 정몽주,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유학의 정통을 전수 받은 성리학의 대가로서 학문의 목적을 성인이 되는 것에 둔 정통파 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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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 성리학 첫 개념논쟁인 태극논쟁의 이언적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며, 본관은 여강[驪江, 여주(驪州)].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그는 1517년 영남지방의 선배학자인 손숙돈(孫叔暾)과 조한보(曺漢輔) 사이에 토론되었던 성리학의 기본쟁점인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에 뛰어들었고, 주희의 주리론적 견해를 바탕으로 두 학자의 견해를 모두 비판하여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혔다. 그가 벌인 태극의 개념에 관한 논쟁은 조선조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개념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학』의 착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여 『대학장구보유』와 『속대학혹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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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 성리학이 있음을 알게 한 조광조의 힘
    심곡서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성리학의 정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선비들에게 조광조는 성리학의 도리로 자신을 수련한 수기(修己)와 나아가 임금과 조정, 백성을 성리학의 길로 이끌려고 치인(治人)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어질고 아름다운 인품으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성리학적 정도(正道)를 구현하려고 한 조광조의 강인한 의지와 실천력은 성리학이 단지 개념이 아닌 현실과 실제임을 후대에 보여준 태산북두와 같은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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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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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이천시

    성리학·천문·지리·역학 등에 뛰어난 성리학자 이관의
    이관의는 세종부터 성종에 걸쳐 활약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초년에 과거시험에 여러 차례 도전하였으나 낙방하여 이천 양각산 밑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여 학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자 많은 선비들이 이관의에게 배움을 청했다. 손순효의 추천을 받아 경연에서 『대학』과 『중용』을 강론하기도 했고, 성종이 등용하고자 했으나 나이가 많아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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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원주시

    한국 여성 지성사의 태두 임윤지당
    임윤지당의 본관은 풍천(豊川)으로 1721년 노론계열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집안에서 여러 형제들과 함께 강론하면서 성장하였으며, 식견이 탁월하고 명료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오빠 임성주(任聖周)는 평생 동안 윤지당을 지지해주고 학문적 대화를 나눈 동료이자 스승이었다. 1739년 신광유(申光裕)와 혼인하였으나 일찍 사별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면서 두 시동생에게 귀감이 될 만큼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1793년 사망하기 전까지 글쓰기에 전념하여 성리학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여군자의 삶을 살았다. 저서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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