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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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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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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피난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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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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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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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80호가 넘는 마을이 2채 남고 전부 불타버렸다.
    내가 맞이한 6.25전쟁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지역은 고암면에서 가장 깊은 산골 마을이었고 지금은 감동저수지가 커다랗게 축조되어 있어 풍부한 수량이 있으나 그때는 저수지도 없었고 교통이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통신수단은 아예 없던 시절이라 전쟁이 터졌다는 소문이 동네에 들려오더니 얼마 안 있어 비행기 소리가 하늘에서 나고 전쟁의 징후가 나타났다. 창녕 쪽의 피난 행렬이 고암면 사무소 쪽으로부터 우리 마을로 밀려들어 왔으며 얼마 안 되어 감골재를 넘는 인원이 홍수처럼 넘쳐났고 갈수록 인원이 늘어났다. 내가 사는 마을은 고암면의 마지막 끝자락 감골재 바로 아래 동네, 미곡마을인데 지리적으로도 숨기가 유리하고 밀양과도 가까운 곳이라서 피난을 가기도 쉬웠다. 그래서 굳이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들과 국군이 피난을 떠나라는 독촉이 점점 심해졌고 만약 피난을 가지 않으면 이 동네를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그 유명한 눈물의 감골재를 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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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신부의 신발이 없어 이웃집에서 빌려 신고 시집왔다.
    6.25전쟁은 우리 부부에게 잊히지 않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때에 전쟁이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신부가 시댁의 9월제를 지내려 와야 할 판인데 신발이 없어 이웃집 어른의 신발을 빌려신고 시댁의 제례를 마치고 다시 친정으로 가야만 했다. 시댁이 불타버려서 기거할 곳이 없어 어느 정도 움막집이라도 마련해야 하고 사람을 살 수 있는 최소 여건이라도 구비 되어야 하니 그동안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했다. 나는 그 다음 해까지 걸쳐서 부지런히 집을 지어 마침내 신혼집을 마련하고 신접살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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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동해의 솟은 해를 가슴에 안고”,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은 1950년 8월 5일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도에서 모병된 해병대 3기가 훈련을 받은 곳이다. 돌과 시멘트로 지은 막사와 세면장이 남아 있다. 세면장은 출입구 동선과 목욕 시설 등이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훈련시설에서 ‘지옥훈련’을 받은 해병대 3기 1,500명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4기 1,500명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한국군 해병대는 인천과 서울 수복에 이어 1951년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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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작은 한반도였던 그곳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6.25 전쟁에서 붙잡힌 북한 측 포로들의 생활과 포로 송환 과정 등을 다양한 자료와 수용소 내 물품을 통해 전하는 박물관이다.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위치하며 1999년에 세워졌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이유, 포로 관리 상황, 수용소 내 사건과 사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밖의 흥남철수작전기념비, 포로생활관, 6.25 역사관, 탱크 전시관, 포로 설득관, MㆍP 다리, 포로사상대립관, 무기 전시장, 야외 막사, 디오라마관, 기념광장, 영상실, 잔존 유적지 등의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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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사쿠라 지고 벚꽃 피는 군항,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
    일본 해군은 1905년부터 진해만을 중요하게 여겨 1910년부터 진해를 해군 기지로 건설했다. 진해요항부 사령부 건물은 1914년 준공되었다. 르네상스 절충양식으로 지어진 진해요항부 사령부는 화려한 외관을 갖춘 건축물이다. 일본 해군 기지 건설로 난리를 겪어야 했던 조선인의 후손들이 이제는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를 매년 봄 진해에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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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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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나의 의용경찰 생활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 내 나이는 18세의 청소년이었다. 나는 내일의 농촌 기수로서 꿈을 키우며 농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는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터라 하루의 피곤함도 보람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물론 민족의 비극인 6·25가 일어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순창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6·25가 터지기 전에 지역에서 이따금 출몰하여 약탈을 해갔던 빨치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라 걱정은 더 컸다. 이윽고 전쟁의 과정은 참혹했고, 사람들은 무분별한 전쟁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나는 이 이상 견디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인계면 지서에 의용경찰로 지원하여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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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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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국전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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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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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의 제주피난
    이중섭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귀포에 피난하여 머물렀다. 1평 남짓한 방이지만 네 식구가 함께 살면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현재 서귀포에는 이중섭의 피난당시 살았던 소박한 가옥과 1996년 지정된 이중섭거리가 잘 정돈되어져 있으며, 2002년 개관된 이중섭 미술관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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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한국 공군의 대부 헤스 대령 기념비
    헤스 대령은 미 공군에서 대구기지로 1950년 7월 2일 전입하여 초대 문관을 지냈고, 1951년 말까지 1일 3회 이상 출격한 조종사이다. 한국 공군이 창설되기 전 Bout One(한국 공군 창설 계획)의 부대장으로 파견되어 한국 공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훈련시켰다. 6.25 당시 그는 무려 250회나 출격한 항공전의 영웅이었고, 대한민국 공군의 대부였으며, 1천여 명의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대피시켰던 전쟁고아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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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제주출신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헌병으로 근무하다
    1930년 제주에서 출생한 고기원은 6·25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6·25가 발발한 뒤 1950년 10월 1일에 입대하여 한 달간 훈련을 받은 후 곧바로 헌병대에 배속되었다. 부산 거제리에 있는 헌병사령부 소속 107헌병대로 포로수용소 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경비병으로 근무하게 되고 7년 동안의 군 생활 대부분을 행정병으로 지낸다. 6·25당시 훈련소의 실태와 부대배치에 대한 속사정, 포로수용소 근무시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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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전쟁을 넘어 굳세게 살아가는 삶, 영화 『국제시장(2014)』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이 주연을 맡은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의 비극·감동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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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1976년 우진필름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이다. 나한봉과 한성의 각본으로 진유영, 유영국, 김지혜, 장혁 등이 출연하였으며, 상영시간은 95분이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대적하는 국군의 고군분투와 희생정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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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으로 인한 가족해체, 영화 『군번 없는 용사(1966)』
    1966년 개봉된 「군번 없는 용사」는 「7인의 여포로」에 대한 보상으로 제작된 이만희의 반공영화이다. 게릴라 부대 대장인 형(신영균)과 북한군 장교인 동생(신성일) 사이에서 아버지(최남현)가 작은아들에게 반동으로 몰려 처형되는 가족 해체의 절대 비극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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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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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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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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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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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즉사하다.
    내가 겪은 6.25전쟁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어느 날 한 전우가 중대장이 전선을 파악하고 오겠다고 하여 나와 임무를 교대하였는데, 몇 시간 후 아군 진지에 적의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전사했다. 이후 휴전협정이 되어서야 1956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전역 특명을 받아 그리운 어머님이 계시는 고향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온다. 6.25전쟁에서의 피난생활과 군대생활, 6.25 한국전쟁 그 자체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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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분 주먹밥 3개를 한꺼번에 주는데 전부 얼어있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군번은 9224625번이다. 강원도 화천 702고지 방어 전투에 8개월간 전투가 이어졌는데 나는 전투참여 연대에 소속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전투 중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항문이 찢어져 후방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와 같이 92번으로 시작되는 군번이 6.25 전쟁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빠르게 응급조치한 후에는 서울의 36병원으로 후송되어 입원하였고 입원 생활 1개월여 정도 뒤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져 더 이상 대규모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군대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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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던 우두령 옛길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가운데 하나인 우두령은 조선시대부터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지름길로 이용되었던 옛길이다. 우두령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로 가운데 김천도에 편성되었다. 고개 마루에는 우두령을 넘는 길손의 휴식처인 소지원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에서 전라도 무주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우두령에서 무찔렀다. 우두령은 경상북도 김천으로 흐르는 감천과 경상남도 거창으로 흐르는 계수천의 분수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에서 고도가 낮은 고갯길이었던 우두령 옛길은 일찍부터 교통 및 군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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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까지 소를 몰고 피란 갔다 왔다 (이완종 수기)
    6·25전쟁이 터진 해 대구 수창국민학교의 5학년생이었던 이완종은 소등에 짐을 싣고 창녕 이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을 간 창녕읍에도 포탄이 떨어져 부산을 목표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서 돌아오니, 마을 주변에는 지뢰, 수류탄 등 위험한 폭발물이 곳곳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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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탄의 화염속에서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정홍모 수기)
    정홍모는 창녕 남산 옆에 떨어지는 포탄을 재미있게 보았다. 당시 창녕 명덕초등학교에 UN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창녕에 주둔해 있던 UN군이 갑자기 이동하고 나서 그 이튿날 창녕 읍민들에게 피란 명령이 내려 고암면의 감골재를 넘어 밀양으로 가라 하여, 피란길을 떠나 약 1개월간의 피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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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삭이 된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장사를 하였다 (이한식 수기)
    전쟁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한식은  시모님, 남편, 세 살짜리 딸과 피난을 떠났다. 부북면 신촌 다리 밑에서 자리를 잡고, 남편은 밖에 나가면 방위병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숨어다니고 이한식은 만삭이 된 몸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입소문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니, 담만 남아있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그래도 방이었던 자리에 청소하여 바닥에 풀을 깔고 그 위에 누웠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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