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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동해의 솟은 해를 가슴에 안고”,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은 1950년 8월 5일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도에서 모병된 해병대 3기가 훈련을 받은 곳이다. 돌과 시멘트로 지은 막사와 세면장이 남아 있다. 세면장은 출입구 동선과 목욕 시설 등이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훈련시설에서 ‘지옥훈련’을 받은 해병대 3기 1,500명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4기 1,500명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한국군 해병대는 인천과 서울 수복에 이어 1951년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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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작은 한반도였던 그곳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6.25 전쟁에서 붙잡힌 북한 측 포로들의 생활과 포로 송환 과정 등을 다양한 자료와 수용소 내 물품을 통해 전하는 박물관이다.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위치하며 1999년에 세워졌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이유, 포로 관리 상황, 수용소 내 사건과 사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밖의 흥남철수작전기념비, 포로생활관, 6.25 역사관, 탱크 전시관, 포로 설득관, MㆍP 다리, 포로사상대립관, 무기 전시장, 야외 막사, 디오라마관, 기념광장, 영상실, 잔존 유적지 등의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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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사쿠라 지고 벚꽃 피는 군항,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
    일본 해군은 1905년부터 진해만을 중요하게 여겨 1910년부터 진해를 해군 기지로 건설했다. 진해요항부 사령부 건물은 1914년 준공되었다. 르네상스 절충양식으로 지어진 진해요항부 사령부는 화려한 외관을 갖춘 건축물이다. 일본 해군 기지 건설로 난리를 겪어야 했던 조선인의 후손들이 이제는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를 매년 봄 진해에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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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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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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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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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경기도편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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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가평군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경기도 가평지역에 소재한 참전 기념비, 전투 기념비, 창의탑, 위령탑 등을 담은 영상이다. 6·25전쟁의 양상과 참전용사들의 호국영웅 정신을 알아본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옹진군 홍경애씨의 증언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옥 같은 생각이 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무고하게 죽었다. 전쟁의 잔상으로 황량해진 거리엔 죽은 엄마 젖을 빨며 철없이 엄마 시체를 넘으며 노는 아이의 모습, 전깃줄에 수두룩하게 사람 손을 묶어 끌고 가며 여자들이 뒤쫓아 통곡하던 모습, 끌고 가던 사람들을 묶은 채로 창고에 넣고 불태워 죽이던 장면, 9·28 이후에 인민군이 도망가고 땅에 묻힌 시체를 꺼내서 늘어놓았던 장면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특히 끔찍한 것은 철없는 둘째 아들이 11살이 되도록 우리 엄마는 전쟁 중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 소리이다. 함포사격을 하는 통에 피난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뛰는데 잠시 놓쳤다가 겨우 찾은 것을 그렇게 말해서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의 말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애를 버리고 간 사람도 많았고, 젖먹이 애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갓난애를 포대로 싸서 바다에 넣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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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정배리 한경석씨의 증언
    슬프다! 나의 선친께서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날벼락 같은 참화를 당하셨는가? 어찌 사람을 이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공산당의 북한은 지금 어떤가? 그런데 한심한 것은 요즈음 전후세대들은 대개가 북한(공산당)이 이렇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나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나라다. 내가 병들어 죽게 된 몸이지만 앞날이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6.25당시 나는 16세의 어린 나이였기에,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이나 형님들로부터 들은 바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형님과 어른들의 말씀을 들은 바 기억을 더듬어 이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내가 이미 병들어 있거늘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거짓 없이 들은바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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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전투의 영웅, 김경진 육군중령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10일 동안 격전을 치루었다. 이들은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포탄이 하루 평균 5만 발 가까이 작렬하는 등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고지공방전을 치루었다. 김경진 소령은 이 과정에서 백마고지를 탈취, 확보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렇지만 김경진 소령이 고지탈환 작전 중 최후의 돌격사격을 전개하려는 찰라, 적군이 쏜 박격포탄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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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연천 베티고지전투의 영웅, 김만술 육군대위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베티고지는 제1사단의 전초기지로 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2소대장 김만술 소위는 1953년 7월 15일 소대원 35명과 함께 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 2개 대대 규모의 적군이 야간의 어둠을 이용하여 인해전술로 공격해오자,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은 이들과 5차례의 공방전을 벌였고, 13시간 동안의 치열한 혈전 끝에 적을 격파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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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가평지구전투의 영웅, 권동찬 준장
    권동찬 장군은 1950년 11월 13일 제32연대 초대 연대장으로 보임되자 수도방어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공산군을 탐색 격멸하였으며, 중장비를 갖춘 적의 대병력을 1951년 1월 1일 미명에 무수히 사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지원이 불가능하자 최후를 각오하고 적의 2중 3중의 포위망에서 격전을 치루었고 마지막 일발로 장렬히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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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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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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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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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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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 지역문화 Pick (1건)
  • 지방문화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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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지명 설화(3) 독뫼산 이야기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남해군

    남해지명 설화(3) 독뫼산 이야기
    『남해 구전설화 남해섬 마실이바구』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울부짖는 독뫼산 이야기
  • 존슨탕? 부대찌개!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의정부시

    존슨탕? 부대찌개!
    2025년 대학생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지역N문화 '미군부대의 보급품으로 만든 부대찌개' 콘텐츠를 바탕으로, 6·25 전쟁 시절 할머니와 가족, 그리고 미군의 이야기를 통해 부대찌개의 유래를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 창작 작품입니다. *관련 링크 : https://ncms.nculture.org/korean-war/story/4334
  • 함양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

    출처 :경상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남 >함양군

    함양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
    경남 함양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경남 함양은 지리적으로 지리산과 덕유산이 위치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의 주요 거점이었다. 빨치산이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 빨치산과 한국군의 분쟁 사이에 놓였던 함양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역사의 상흔을 살핀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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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라도편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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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나의 의용경찰 생활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 내 나이는 18세의 청소년이었다. 나는 내일의 농촌 기수로서 꿈을 키우며 농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는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터라 하루의 피곤함도 보람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물론 민족의 비극인 6·25가 일어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순창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6·25가 터지기 전에 지역에서 이따금 출몰하여 약탈을 해갔던 빨치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라 걱정은 더 컸다. 이윽고 전쟁의 과정은 참혹했고, 사람들은 무분별한 전쟁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나는 이 이상 견디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인계면 지서에 의용경찰로 지원하여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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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전쟁은 없어야
    심병관 씨는 말 수가 상당히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서화리에 있던 시간보다는 피난을 나가서 원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25한국전쟁의 피해 상황을 적어놓은 메모지와 처세술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세술을 읽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더 가지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려하려 하지도 말고,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생각하라”였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 自厚)니라."라는 『명심보감』의 내용도 있었다. 곧 온갖 일에 너그러우면 그 복이 스스로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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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국총을 들고 싸웠지
    조병수 씨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셨고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구술을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구술은 두시간씩 두번 진행되었다. 구술을 하는 조병수 씨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때로는 홍 분했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서 스스로 부끄럽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포장해서 말했다가 스스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병수 씨의구술에 상당한 신뢰가 갔다. 특히 조병수 씨의 구술은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생활에서 강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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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개골의 밤
    <면담상황> 이곳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곳이었다. 이정화 씨는 구술 중 한숨을 자주 내쉬고, 삶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으로 얼룩졌다고 했다. 지주라는 이유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살다가 둘은 품 안에서 보냈다. 이처럼 이정화 씨는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전쟁을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아래의 구술은 인제군의 전쟁 전후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재조명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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