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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호를 인자 우리 한 대씩 파 가지고 그 눈만 빼꼼하이 내놓고 이래 있는데"
    정용규 씨는 전쟁 당시에 23세였다. 그렇다 보니 인민군들에게 불려가기에 십상이었다. 집이 다 타 버리는 바람에 집 근처 대밭에 몸을 숨겼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인민군들은 호를 파서 실탄을 숨기는 일을 시켰는데, 배가 아프다고 날을 새다가 몰래 도망쳐 나왔다. 거기서 먹은 것이 없어 힘도 없었다. 겨우 거기서 얻어먹은 밥 한 그릇으로 힘을 내어서 골짜기를 넘나들며 목숨을 숨겼다. 그때가 그렇게 무섭고 힘들 수가 없었다. 인민군이 의령에서 후퇴한 후에 영장을 받고 제주도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강원도로 배치를 받았다. 최전방에서 인민군들과 마주 보고 총을 겨누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고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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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나는 인자 아홉 살 묵은 기 동생 돌 지낸 기 있었는데…"
    김경자 씨는 한국전쟁 당시 겨우 아홉 살 소녀였다. 부림면 박진마을은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있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피란을 갔다. 김경자 씨는 갓 돌이 지난 어린 동생을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길에서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잡혀가 배를 곯으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낯선 동네에서 쌀을 동냥하여 죽을 끓여 먹었다. 아버지가 삼 일 만에 오셨고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마두라는 곳에서 피란을 했는데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는 전생 중에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약을 못 써 세상을 떠나셨다. 이어 할머니와 어린 동생까지 경자 씨 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고 박진마을로 돌아갔지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 없었다. 모두 불에 타 없었고.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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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옹진군 홍경애씨의 증언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옥 같은 생각이 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무고하게 죽었다. 전쟁의 잔상으로 황량해진 거리엔 죽은 엄마 젖을 빨며 철없이 엄마 시체를 넘으며 노는 아이의 모습, 전깃줄에 수두룩하게 사람 손을 묶어 끌고 가며 여자들이 뒤쫓아 통곡하던 모습, 끌고 가던 사람들을 묶은 채로 창고에 넣고 불태워 죽이던 장면, 9·28 이후에 인민군이 도망가고 땅에 묻힌 시체를 꺼내서 늘어놓았던 장면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특히 끔찍한 것은 철없는 둘째 아들이 11살이 되도록 우리 엄마는 전쟁 중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 소리이다. 함포사격을 하는 통에 피난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뛰는데 잠시 놓쳤다가 겨우 찾은 것을 그렇게 말해서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의 말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애를 버리고 간 사람도 많았고, 젖먹이 애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갓난애를 포대로 싸서 바다에 넣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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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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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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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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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 한국전쟁 흔적

연관자료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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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불암산은 한국에서 선정한 인기명산이다. 불암산은 6.25전쟁 당시 육사생도들로 구성된 '호랑이 유격대'가 활동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 25일째였던 2기 생도들은 아직 군인이 아니었기에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생도의 신분으로 "이 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자"며 불암산에 은거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6.25 전쟁 유적, 포천 방어벙커
    포천 방어벙커가 있는 43번 국도는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벙커는 서부전선, 중부 전선, 동해 전선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곳에 벙커가 생긴 이유는 양문 근처는 38선이 있는 곳이기에 국경이 가까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곳은 38선 남쪽 15리 정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고, 옆은 절벽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포천 방어벙커는 전쟁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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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속초시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 – 속초 동명동 성당 이야기
    속초 동명동 성당은 전쟁 직후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이다. 물자난 속에서도 미군과 신자의 협력으로 건립되어 1953년 완공되었다. 이 성당은 병인박해 시절 도문동 옹기점마을 신앙공동체의 뿌리를 이어받아 속초 천주교의 본산이 되었다. 오늘날 속초 신앙사와 공동체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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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동고 교사 신축공사 때 중장비 지원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군산은 인민군 점령 아래 두 달간 강제 부역과 폭격 피해를 겪었다. 많은 주민이 비행장 복구 작업에 동원되었고 사상자도 발생했다. 전쟁으로 관공서와 항만 시설은 파괴되고 피난민촌이 형성되며 극심한 빈곤이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미군기지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그중 군산중·군산동중·멜볼딘여고 등 학교 건물 공사에 공병대 중장비가 투입되며 교육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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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연수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84년 9월 인천시와 국방부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에 세운 기념관이다.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는 암호명으로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주도하였으며, 전쟁 전반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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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황해도 피란민들의 터전,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괭이부리마을은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땅 위에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노동자들과 6·25 전쟁 이후엔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기존의 달동네는 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생기는 등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오래된 골목 걷기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옛 모습도 함께 간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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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 학생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 인천학생 6.25참전관
    한국전쟁 당시, 어린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실전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중학생이었던 이경종은 어린 나이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이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서 2004년 12월 18일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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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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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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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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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라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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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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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나의 의용경찰 생활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 내 나이는 18세의 청소년이었다. 나는 내일의 농촌 기수로서 꿈을 키우며 농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는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터라 하루의 피곤함도 보람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물론 민족의 비극인 6·25가 일어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순창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6·25가 터지기 전에 지역에서 이따금 출몰하여 약탈을 해갔던 빨치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라 걱정은 더 컸다. 이윽고 전쟁의 과정은 참혹했고, 사람들은 무분별한 전쟁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나는 이 이상 견디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인계면 지서에 의용경찰로 지원하여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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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부평 양키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어요
    부평 양키시장은 광복 후 미군기지 ASCOM CITY의 PX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품이 모이며 형성된 시장이다. 부평은 도매 중심지로, 군복·식량·화장품·가전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거래됐다. 겉으로는 전통시장 같지만, 뒤에서는 술·담배·총기 등이 은밀히 오갔다. 전쟁 이주민들이 모여 삶을 꾸린 공간으로, “없는 물건이 없던” 시장은 곧 부평의 역사이자 시대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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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피란민들의 정착한 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당감동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들어온 피난민 정착촌 중 하나였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당감동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구 시장 골목’에 정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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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부산 피난민 마을의 색다른 변신
    감천문화마을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들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태극도마을이라는 이름의 낙후된 곳으로 알려져 왔으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환경정비를 하고 담장이나 건물 벽에 벽화 등을 그리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이 진행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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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서구

    아미동 무덤마을
    아미동 무덤 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으로 6·25 전쟁이 끝날 무렵 국제시장과 보수천 주변의 피난민들이 정부의 판잣집 철거계획과 화재로 인해 아미동 공동묘지로 밀려 들어와 정착촌을 이룬 자연마을이다. 지금도 건물과 마을곳곳에 쓰인 상석과 비석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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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부산까지 소를 몰고 피란 갔다 왔다 (이완종 수기)
    6·25전쟁이 터진 해 대구 수창국민학교의 5학년생이었던 이완종은 소등에 짐을 싣고 창녕 이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을 간 창녕읍에도 포탄이 떨어져 부산을 목표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서 돌아오니, 마을 주변에는 지뢰, 수류탄 등 위험한 폭발물이 곳곳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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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포탄의 화염속에서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정홍모 수기)
    정홍모는 창녕 남산 옆에 떨어지는 포탄을 재미있게 보았다. 당시 창녕 명덕초등학교에 UN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창녕에 주둔해 있던 UN군이 갑자기 이동하고 나서 그 이튿날 창녕 읍민들에게 피란 명령이 내려 고암면의 감골재를 넘어 밀양으로 가라 하여, 피란길을 떠나 약 1개월간의 피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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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삭이 된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장사를 하였다 (이한식 수기)
    전쟁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한식은  시모님, 남편, 세 살짜리 딸과 피난을 떠났다. 부북면 신촌 다리 밑에서 자리를 잡고, 남편은 밖에 나가면 방위병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숨어다니고 이한식은 만삭이 된 몸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입소문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니, 담만 남아있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그래도 방이었던 자리에 청소하여 바닥에 풀을 깔고 그 위에 누웠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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