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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전쟁은 없어야
    심병관 씨는 말 수가 상당히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서화리에 있던 시간보다는 피난을 나가서 원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25한국전쟁의 피해 상황을 적어놓은 메모지와 처세술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세술을 읽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더 가지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려하려 하지도 말고,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생각하라”였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 自厚)니라."라는 『명심보감』의 내용도 있었다. 곧 온갖 일에 너그러우면 그 복이 스스로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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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딱국총을 들고 싸웠지
    조병수 씨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셨고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구술을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구술은 두시간씩 두번 진행되었다. 구술을 하는 조병수 씨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때로는 홍 분했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서 스스로 부끄럽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포장해서 말했다가 스스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병수 씨의구술에 상당한 신뢰가 갔다. 특히 조병수 씨의 구술은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생활에서 강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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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동개골의 밤
    <면담상황> 이곳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곳이었다. 이정화 씨는 구술 중 한숨을 자주 내쉬고, 삶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으로 얼룩졌다고 했다. 지주라는 이유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살다가 둘은 품 안에서 보냈다. 이처럼 이정화 씨는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전쟁을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아래의 구술은 인제군의 전쟁 전후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재조명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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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일화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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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밥 짓던 뜨거운 솥을 이고가야 했다 (황창기 수기)
    황창기는 1950년 8월 6일 전쟁을 피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아침밥을 짓다 갑자기 전투가 벌어질 것이니 빨리 떠나라는 미군의 말에 뜨거운 밥솥을 싸서 짊어지고 다시 피난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밀양까지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과 집은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아있어 각기 주거시설을 다시 설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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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호를 인자 우리 한 대씩 파 가지고 그 눈만 빼꼼하이 내놓고 이래 있는데"
    정용규 씨는 전쟁 당시에 23세였다. 그렇다 보니 인민군들에게 불려가기에 십상이었다. 집이 다 타 버리는 바람에 집 근처 대밭에 몸을 숨겼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인민군들은 호를 파서 실탄을 숨기는 일을 시켰는데, 배가 아프다고 날을 새다가 몰래 도망쳐 나왔다. 거기서 먹은 것이 없어 힘도 없었다. 겨우 거기서 얻어먹은 밥 한 그릇으로 힘을 내어서 골짜기를 넘나들며 목숨을 숨겼다. 그때가 그렇게 무섭고 힘들 수가 없었다. 인민군이 의령에서 후퇴한 후에 영장을 받고 제주도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강원도로 배치를 받았다. 최전방에서 인민군들과 마주 보고 총을 겨누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고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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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나는 인자 아홉 살 묵은 기 동생 돌 지낸 기 있었는데…"
    김경자 씨는 한국전쟁 당시 겨우 아홉 살 소녀였다. 부림면 박진마을은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있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피란을 갔다. 김경자 씨는 갓 돌이 지난 어린 동생을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길에서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잡혀가 배를 곯으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낯선 동네에서 쌀을 동냥하여 죽을 끓여 먹었다. 아버지가 삼 일 만에 오셨고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마두라는 곳에서 피란을 했는데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는 전생 중에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약을 못 써 세상을 떠나셨다. 이어 할머니와 어린 동생까지 경자 씨 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고 박진마을로 돌아갔지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 없었다. 모두 불에 타 없었고.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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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옹진군 홍경애씨의 증언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옥 같은 생각이 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무고하게 죽었다. 전쟁의 잔상으로 황량해진 거리엔 죽은 엄마 젖을 빨며 철없이 엄마 시체를 넘으며 노는 아이의 모습, 전깃줄에 수두룩하게 사람 손을 묶어 끌고 가며 여자들이 뒤쫓아 통곡하던 모습, 끌고 가던 사람들을 묶은 채로 창고에 넣고 불태워 죽이던 장면, 9·28 이후에 인민군이 도망가고 땅에 묻힌 시체를 꺼내서 늘어놓았던 장면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특히 끔찍한 것은 철없는 둘째 아들이 11살이 되도록 우리 엄마는 전쟁 중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 소리이다. 함포사격을 하는 통에 피난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뛰는데 잠시 놓쳤다가 겨우 찾은 것을 그렇게 말해서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의 말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애를 버리고 간 사람도 많았고, 젖먹이 애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갓난애를 포대로 싸서 바다에 넣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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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the Sunshine Division in Korea)」는 미국방위군기념재단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2001년 미국 화가 릭 리브스(Rick Reeves, 1956~현존)가 미국 제40사단 병사들이 중공군이 차지했던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캔버스 유화로 76×100cm 크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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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영동군

    피카소가 묘사한 참상「한국에서의 학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Massacre in Korea, 1951)」은 고야(Goya)와 마네(Manet)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6·25전쟁의 참상을 그린 역사화이다. 이 작품은 학살자가 누구인지,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피카소 또한 구체적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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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충청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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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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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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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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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적도평양점령(赤都平壤占領) 선두부대
    나의 소대는 베티고지 아군의 전초진지(前確陣地)에 배치되었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얼마 안 되어 육안으로도 관측할 정도였다. 밀고 밀리는 전투는 계속 되었고 피아(波我)구분이 안되어 육박전을 할 때면 서로 머리를 만져 보고 피아를 구분하면서 난투를 하는 진경은 차마눈뜨고 볼수없는 처절한 생지옥이었다. 베티고지에서 전투중 휴전을 맞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나는 92연대 인사주임및 부관을 끝으로 1964년 2월 29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평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 비운(悲運)을 가져온 6.25를 회상하고 무엇하나 우리들의 피와 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고귀한 국토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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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 한국전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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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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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불암산은 한국에서 선정한 인기명산이다. 불암산은 6.25전쟁 당시 육사생도들로 구성된 '호랑이 유격대'가 활동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 25일째였던 2기 생도들은 아직 군인이 아니었기에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생도의 신분으로 "이 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자"며 불암산에 은거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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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좌우익의 대립상황을 밀도감 있게 담아낸 영화 『태백산맥(1994)』
    1994년 개봉된 「태백산맥」은 조정래가 쓴 동명의 대하장편소설을 원작으로, 1948년 10월 일어난 여수ㆍ순천사건으로부터 6ㆍ25전쟁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보성 벌교를 배경으로 하여 일어나는 좌ㆍ우익의 대립상황을 밀도감 있게 담아낸 전쟁드라마영화로 임권택 감독이 연출했으며, 영화진흥공사가 지원한 국책영화이다. 안성기(김범우), 김갑수(염상구), 김명곤(염상진), 신현준(정하섭), 오정해(소화) 등이 출연했고 상영시간은 16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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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가족의 희생사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
    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으로 한 형제의 산산이 부서진 삶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린 영화이다. 전장에 끌려간 형과 동생, 두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숱한 운명적 순간을 겪으며 살아남지만, 형이 동생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고 산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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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아군 유격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싸우는 사자들(1962)』
    「싸우는 사자들」은 6.25전쟁 때 철원지구에서 벌어진 아군 유격대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으로 1962년 개봉한 김묵 감독의 작품이다. 상영시간은 117분이고, 김석훈, 최지희, 황해, 엄앵란, 이빈화, 장동휘가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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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6.25 전쟁 유적, 포천 방어벙커
    포천 방어벙커가 있는 43번 국도는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벙커는 서부전선, 중부 전선, 동해 전선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곳에 벙커가 생긴 이유는 양문 근처는 38선이 있는 곳이기에 국경이 가까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곳은 38선 남쪽 15리 정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고, 옆은 절벽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포천 방어벙커는 전쟁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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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속초시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 – 속초 동명동 성당 이야기
    속초 동명동 성당은 전쟁 직후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이다. 물자난 속에서도 미군과 신자의 협력으로 건립되어 1953년 완공되었다. 이 성당은 병인박해 시절 도문동 옹기점마을 신앙공동체의 뿌리를 이어받아 속초 천주교의 본산이 되었다. 오늘날 속초 신앙사와 공동체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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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동고 교사 신축공사 때 중장비 지원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군산은 인민군 점령 아래 두 달간 강제 부역과 폭격 피해를 겪었다. 많은 주민이 비행장 복구 작업에 동원되었고 사상자도 발생했다. 전쟁으로 관공서와 항만 시설은 파괴되고 피난민촌이 형성되며 극심한 빈곤이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미군기지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그중 군산중·군산동중·멜볼딘여고 등 학교 건물 공사에 공병대 중장비가 투입되며 교육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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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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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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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즉사하다.
    내가 겪은 6.25전쟁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어느 날 한 전우가 중대장이 전선을 파악하고 오겠다고 하여 나와 임무를 교대하였는데, 몇 시간 후 아군 진지에 적의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전사했다. 이후 휴전협정이 되어서야 1956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전역 특명을 받아 그리운 어머님이 계시는 고향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온다. 6.25전쟁에서의 피난생활과 군대생활, 6.25 한국전쟁 그 자체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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