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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충청북도 한국전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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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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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충주 동락리전투
    충주 동락리전투는 1950년 7월 여주와 장호원을 따라 충청북도 음성 쪽으로 남진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이 충주방면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기습공격으로 격파하여 개전 이래 국군 최초의 전승을 거둔 전투이자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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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진천군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지연시킨 방어전투, 진천지구전투
    진천전투는 북위 37도 지점을 연결하는 차령산맥선 지연작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투로서 1950년 7월 6일부터 13일까지 국군 수도사단과 제2사단, 독립 제17연대가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청주 북방의 진천지역에서 지연시킨 방어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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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영동군

    피카소가 묘사한 참상「한국에서의 학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Massacre in Korea, 1951)」은 고야(Goya)와 마네(Manet)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6·25전쟁의 참상을 그린 역사화이다. 이 작품은 학살자가 누구인지,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피카소 또한 구체적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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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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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가평지구 전투전적비
    가평지구 전투전적비는 1958년 3월 15일에 건립되었는데, 이는 국군 제5·6사단 및 미 제9군단이 중공군과 북한군을 맞아 가평지구를 끝까지 사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제1군단 사령부와 가평군이 주관하여 건립하였다. 가평 용문산전투 (1951.5.17~28)는 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전면방어로 격퇴함은 물론, 그 여세를 몰아 화천발전소를 탈환한 전투이다. 6·25전쟁사에서 최고의 전과를 올린 전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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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오산시

    유엔군 초전기념비
    유엔군 초전기념비는 유엔군이 6・25전쟁 당시 북한군을 상대로 벌인 최초의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비이다. 6・25전쟁 발발 10일만에 유엔군 선봉대인 미 제24사단 540명이 격전을 벌인 곳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매년 7월 5일이면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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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터키여단의 용맹함으로 승리한 김량장리 전투
    6.25 전쟁 중기인 1951년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용인시 김량장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김량장 전투'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김량장리 전투라고하면 151고지 공방전을 뜻한다. 터키 여단에서 241보병연대 제3대대가 공격의 선두를 자청해 백병전을 벌인 끝에 중공군 474명이 죽고, 터키군 12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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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전쟁은 없어야
    심병관 씨는 말 수가 상당히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서화리에 있던 시간보다는 피난을 나가서 원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25한국전쟁의 피해 상황을 적어놓은 메모지와 처세술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세술을 읽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더 가지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려하려 하지도 말고,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생각하라”였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 自厚)니라."라는 『명심보감』의 내용도 있었다. 곧 온갖 일에 너그러우면 그 복이 스스로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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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딱국총을 들고 싸웠지
    조병수 씨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셨고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구술을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구술은 두시간씩 두번 진행되었다. 구술을 하는 조병수 씨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때로는 홍 분했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서 스스로 부끄럽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포장해서 말했다가 스스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병수 씨의구술에 상당한 신뢰가 갔다. 특히 조병수 씨의 구술은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생활에서 강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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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동개골의 밤
    <면담상황> 이곳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곳이었다. 이정화 씨는 구술 중 한숨을 자주 내쉬고, 삶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으로 얼룩졌다고 했다. 지주라는 이유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살다가 둘은 품 안에서 보냈다. 이처럼 이정화 씨는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전쟁을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아래의 구술은 인제군의 전쟁 전후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재조명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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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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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완주군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온 바나나
    바나나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대만산 바나나가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대만산 바나나의 절반 이상은 경성에서 소비되었는데 이것은 바나나가 사치성 과일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만의 바나나는 1928년 대만 기융(基隆)항과 조선의 인천항에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대만 현지에서는 바나나 백문(百匁)이 단돈 2전이었다. 조선에서 바나나 백문에 12-13전이었다. 해방 후에도 바나나는 인기있는 과일이었는데 1950년대 쌀이 귀하던 시절 서울에서 바나나가 날개돋힌 듯 팔려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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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the Sunshine Division in Korea)」는 미국방위군기념재단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2001년 미국 화가 릭 리브스(Rick Reeves, 1956~현존)가 미국 제40사단 병사들이 중공군이 차지했던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캔버스 유화로 76×100cm 크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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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영동군

    피카소가 묘사한 참상「한국에서의 학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Massacre in Korea, 1951)」은 고야(Goya)와 마네(Manet)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6·25전쟁의 참상을 그린 역사화이다. 이 작품은 학살자가 누구인지,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피카소 또한 구체적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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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김천시

    경상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던 우두령 옛길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가운데 하나인 우두령은 조선시대부터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지름길로 이용되었던 옛길이다. 우두령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로 가운데 김천도에 편성되었다. 고개 마루에는 우두령을 넘는 길손의 휴식처인 소지원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에서 전라도 무주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우두령에서 무찔렀다. 우두령은 경상북도 김천으로 흐르는 감천과 경상남도 거창으로 흐르는 계수천의 분수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에서 고도가 낮은 고갯길이었던 우두령 옛길은 일찍부터 교통 및 군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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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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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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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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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 양키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어요
    부평 양키시장은 광복 후 미군기지 ASCOM CITY의 PX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품이 모이며 형성된 시장이다. 부평은 도매 중심지로, 군복·식량·화장품·가전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거래됐다. 겉으로는 전통시장 같지만, 뒤에서는 술·담배·총기 등이 은밀히 오갔다. 전쟁 이주민들이 모여 삶을 꾸린 공간으로, “없는 물건이 없던” 시장은 곧 부평의 역사이자 시대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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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피난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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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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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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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호가 넘는 마을이 2채 남고 전부 불타버렸다.
    내가 맞이한 6.25전쟁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지역은 고암면에서 가장 깊은 산골 마을이었고 지금은 감동저수지가 커다랗게 축조되어 있어 풍부한 수량이 있으나 그때는 저수지도 없었고 교통이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통신수단은 아예 없던 시절이라 전쟁이 터졌다는 소문이 동네에 들려오더니 얼마 안 있어 비행기 소리가 하늘에서 나고 전쟁의 징후가 나타났다. 창녕 쪽의 피난 행렬이 고암면 사무소 쪽으로부터 우리 마을로 밀려들어 왔으며 얼마 안 되어 감골재를 넘는 인원이 홍수처럼 넘쳐났고 갈수록 인원이 늘어났다. 내가 사는 마을은 고암면의 마지막 끝자락 감골재 바로 아래 동네, 미곡마을인데 지리적으로도 숨기가 유리하고 밀양과도 가까운 곳이라서 피난을 가기도 쉬웠다. 그래서 굳이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들과 국군이 피난을 떠나라는 독촉이 점점 심해졌고 만약 피난을 가지 않으면 이 동네를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그 유명한 눈물의 감골재를 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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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의 신발이 없어 이웃집에서 빌려 신고 시집왔다.
    6.25전쟁은 우리 부부에게 잊히지 않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때에 전쟁이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신부가 시댁의 9월제를 지내려 와야 할 판인데 신발이 없어 이웃집 어른의 신발을 빌려신고 시댁의 제례를 마치고 다시 친정으로 가야만 했다. 시댁이 불타버려서 기거할 곳이 없어 어느 정도 움막집이라도 마련해야 하고 사람을 살 수 있는 최소 여건이라도 구비 되어야 하니 그동안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했다. 나는 그 다음 해까지 걸쳐서 부지런히 집을 지어 마침내 신혼집을 마련하고 신접살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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