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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노원 한국전쟁 흔적

연관자료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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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불암산은 한국에서 선정한 인기명산이다. 불암산은 6.25전쟁 당시 육사생도들로 구성된 '호랑이 유격대'가 활동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 25일째였던 2기 생도들은 아직 군인이 아니었기에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생도의 신분으로 "이 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자"며 불암산에 은거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테마스토리 인천 >연수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84년 9월 인천시와 국방부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에 세운 기념관이다.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는 암호명으로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주도하였으며, 전쟁 전반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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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황해도 피란민들의 터전,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괭이부리마을은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땅 위에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노동자들과 6·25 전쟁 이후엔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기존의 달동네는 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생기는 등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오래된 골목 걷기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옛 모습도 함께 간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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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 학생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 인천학생 6.25참전관
    한국전쟁 당시, 어린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실전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중학생이었던 이경종은 어린 나이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이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서 2004년 12월 18일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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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전쟁은 없어야
    심병관 씨는 말 수가 상당히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서화리에 있던 시간보다는 피난을 나가서 원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25한국전쟁의 피해 상황을 적어놓은 메모지와 처세술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세술을 읽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더 가지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려하려 하지도 말고,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생각하라”였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 自厚)니라."라는 『명심보감』의 내용도 있었다. 곧 온갖 일에 너그러우면 그 복이 스스로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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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딱국총을 들고 싸웠지
    조병수 씨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셨고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구술을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구술은 두시간씩 두번 진행되었다. 구술을 하는 조병수 씨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때로는 홍 분했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서 스스로 부끄럽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포장해서 말했다가 스스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병수 씨의구술에 상당한 신뢰가 갔다. 특히 조병수 씨의 구술은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생활에서 강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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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동개골의 밤
    <면담상황> 이곳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곳이었다. 이정화 씨는 구술 중 한숨을 자주 내쉬고, 삶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으로 얼룩졌다고 했다. 지주라는 이유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살다가 둘은 품 안에서 보냈다. 이처럼 이정화 씨는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전쟁을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아래의 구술은 인제군의 전쟁 전후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재조명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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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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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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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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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국전쟁 흔적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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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의 제주피난
    이중섭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귀포에 피난하여 머물렀다. 1평 남짓한 방이지만 네 식구가 함께 살면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현재 서귀포에는 이중섭의 피난당시 살았던 소박한 가옥과 1996년 지정된 이중섭거리가 잘 정돈되어져 있으며, 2002년 개관된 이중섭 미술관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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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한국 공군의 대부 헤스 대령 기념비
    헤스 대령은 미 공군에서 대구기지로 1950년 7월 2일 전입하여 초대 문관을 지냈고, 1951년 말까지 1일 3회 이상 출격한 조종사이다. 한국 공군이 창설되기 전 Bout One(한국 공군 창설 계획)의 부대장으로 파견되어 한국 공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훈련시켰다. 6.25 당시 그는 무려 250회나 출격한 항공전의 영웅이었고, 대한민국 공군의 대부였으며, 1천여 명의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대피시켰던 전쟁고아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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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제주출신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헌병으로 근무하다
    1930년 제주에서 출생한 고기원은 6·25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6·25가 발발한 뒤 1950년 10월 1일에 입대하여 한 달간 훈련을 받은 후 곧바로 헌병대에 배속되었다. 부산 거제리에 있는 헌병사령부 소속 107헌병대로 포로수용소 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경비병으로 근무하게 되고 7년 동안의 군 생활 대부분을 행정병으로 지낸다. 6·25당시 훈련소의 실태와 부대배치에 대한 속사정, 포로수용소 근무시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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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한국전쟁 흔적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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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함흥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까지
    한경석(남·1941년생)은 모친이 막내인 자신을 비롯해 4남 1녀를 데리고 남하했다.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된 가장 큰 배로 알려진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내려왔다. 배 안에서의 배멀미와 대소변을 보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거제도로 들어와 피난살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으며, 생계는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근근이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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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기차타고 함흥에서 흥남으로, 흥남에서 뱃길로 거제도까지
    이장영(남·1940년생)현 거제도민회회장이다. 유서깊은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목사였던 부친이 흥남철수 작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현봉학(의사)을 도와 당시 미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교인인 가족들은 남은 사람 없이 피난을 나와 함흥에서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왔고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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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흥남에서 LST타고 거제도로
    한장빈(남·1938년생)은 함경남도 장진 태생으로 흥남으로 이주해 5남매의 맏이로 오랫동안 살다가, 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과 주민들의 대피소문을 듣고 12월 18일 즈음에 LST를 타고 거제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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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6.25 전쟁 유적, 포천 방어벙커
    포천 방어벙커가 있는 43번 국도는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벙커는 서부전선, 중부 전선, 동해 전선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곳에 벙커가 생긴 이유는 양문 근처는 38선이 있는 곳이기에 국경이 가까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곳은 38선 남쪽 15리 정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고, 옆은 절벽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포천 방어벙커는 전쟁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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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속초시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 – 속초 동명동 성당 이야기
    속초 동명동 성당은 전쟁 직후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의 성전이다. 물자난 속에서도 미군과 신자의 협력으로 건립되어 1953년 완공되었다. 이 성당은 병인박해 시절 도문동 옹기점마을 신앙공동체의 뿌리를 이어받아 속초 천주교의 본산이 되었다. 오늘날 속초 신앙사와 공동체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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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동고 교사 신축공사 때 중장비 지원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군산은 인민군 점령 아래 두 달간 강제 부역과 폭격 피해를 겪었다. 많은 주민이 비행장 복구 작업에 동원되었고 사상자도 발생했다. 전쟁으로 관공서와 항만 시설은 파괴되고 피난민촌이 형성되며 극심한 빈곤이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미군기지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그중 군산중·군산동중·멜볼딘여고 등 학교 건물 공사에 공병대 중장비가 투입되며 교육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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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북구

    장단에서 서울, 영천 대구를 거쳐 구포까지
    김영귀(1938년생)의 고향은 장단군 군내면 읍내리로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로 편입된 곳이다. 6·25전쟁이 나고 부산까지 피난을 간 그녀는 국제시장에서 엿, 오징어, 양담배 장사를 하였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중 제2국민병으로 뽑혀가 소식이 끊겼던 오빠와 가까스로 상봉하였다. 다시 고향을 찾았으나 폭격으로 어머니의 묘가 소실되었다. 지금은 고향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그 땅을 밟을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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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정선군

    부모가 없는 고아의 피난살이
    신원교는 1926년 정선 덕송리에서 출생하고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산속에 피란생활을 했지만 먹을 것을 챙겨다주는 가족이 없어 굶으며 생활해야 했다. 방위군으로 끌려가서 부산까지 걸어갔다. 방위군은 군복도 군번은 물론 그 어떤 혜택도 없었다. 관리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다. 전쟁 중 인민군은 민간인의 식량을 가져갔고, 아군은 그들보다 더한 횡포를 일삼았으며, 민간인들은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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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남구

    장단에서 서울, 계룡산, 온양, 수원을 거쳐 부산으로
    김예순(1936년생)의 고향은 장단군 군내면 군내리로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로 편입된 곳이다. 그녀는 뒷산에 떨어진 포탄의 파편을 보고 6·25전쟁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가족은 계룡산으로 가서 피난생활을 하였고, 귀향길에 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이후 서울과 부산 등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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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목놓아 그리움을 달래던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6·25 전쟁 종전 후 1954년 발매된 대중가요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이 노래했다. 제목의 '단장(斷腸)'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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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분단과 이별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전쟁 휴전을 전후한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정서를 담아 부른 노래로 이 정서 덕분에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와 통일이 되면 만나자는 내용으로, 흥남부두 외에도 1.4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6.25 당대를 상징하는 가사가 나오며, 이후 영화나 드라마 등에 제목이 자주 패러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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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은평구

    민족을 위한 헌신, 금사향이 부른 『님계신 전선』
    님계신 전선은 6·25전쟁 당시 발표된 노래로 국방부 정훈국 소속이었던 금사향이 노래를 불렀다. 그는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태극기를 휘날리며 공연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다. 님계신 전선 노래비는 은평평화공원 미 해군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 동상 옆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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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피란민들의 정착한 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당감동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들어온 피난민 정착촌 중 하나였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당감동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구 시장 골목’에 정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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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부산 피난민 마을의 색다른 변신
    감천문화마을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들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태극도마을이라는 이름의 낙후된 곳으로 알려져 왔으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환경정비를 하고 담장이나 건물 벽에 벽화 등을 그리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이 진행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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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서구

    아미동 무덤마을
    아미동 무덤 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으로 6·25 전쟁이 끝날 무렵 국제시장과 보수천 주변의 피난민들이 정부의 판잣집 철거계획과 화재로 인해 아미동 공동묘지로 밀려 들어와 정착촌을 이룬 자연마을이다. 지금도 건물과 마을곳곳에 쓰인 상석과 비석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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