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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the Sunshine Division in Korea)」는 미국방위군기념재단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2001년 미국 화가 릭 리브스(Rick Reeves, 1956~현존)가 미국 제40사단 병사들이 중공군이 차지했던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캔버스 유화로 76×100cm 크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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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영동군

    피카소가 묘사한 참상「한국에서의 학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ée, Massacre in Korea, 1951)」은 고야(Goya)와 마네(Manet)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6·25전쟁의 참상을 그린 역사화이다. 이 작품은 학살자가 누구인지,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피카소 또한 구체적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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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라도편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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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나의 의용경찰 생활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 내 나이는 18세의 청소년이었다. 나는 내일의 농촌 기수로서 꿈을 키우며 농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는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터라 하루의 피곤함도 보람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물론 민족의 비극인 6·25가 일어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순창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6·25가 터지기 전에 지역에서 이따금 출몰하여 약탈을 해갔던 빨치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라 걱정은 더 컸다. 이윽고 전쟁의 과정은 참혹했고, 사람들은 무분별한 전쟁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나는 이 이상 견디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인계면 지서에 의용경찰로 지원하여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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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전쟁을 넘어 굳세게 살아가는 삶, 영화 『국제시장(2014)』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이 주연을 맡은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의 비극·감동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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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1976년 우진필름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이다. 나한봉과 한성의 각본으로 진유영, 유영국, 김지혜, 장혁 등이 출연하였으며, 상영시간은 95분이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대적하는 국군의 고군분투와 희생정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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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쟁으로 인한 가족해체, 영화 『군번 없는 용사(1966)』
    1966년 개봉된 「군번 없는 용사」는 「7인의 여포로」에 대한 보상으로 제작된 이만희의 반공영화이다. 게릴라 부대 대장인 형(신영균)과 북한군 장교인 동생(신성일) 사이에서 아버지(최남현)가 작은아들에게 반동으로 몰려 처형되는 가족 해체의 절대 비극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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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연수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84년 9월 인천시와 국방부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에 세운 기념관이다.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는 암호명으로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주도하였으며, 전쟁 전반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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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황해도 피란민들의 터전,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괭이부리마을은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땅 위에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노동자들과 6·25 전쟁 이후엔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기존의 달동네는 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생기는 등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오래된 골목 걷기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옛 모습도 함께 간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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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 학생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 인천학생 6.25참전관
    한국전쟁 당시, 어린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실전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중학생이었던 이경종은 어린 나이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이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서 2004년 12월 18일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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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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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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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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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호를 인자 우리 한 대씩 파 가지고 그 눈만 빼꼼하이 내놓고 이래 있는데"
    정용규 씨는 전쟁 당시에 23세였다. 그렇다 보니 인민군들에게 불려가기에 십상이었다. 집이 다 타 버리는 바람에 집 근처 대밭에 몸을 숨겼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인민군들은 호를 파서 실탄을 숨기는 일을 시켰는데, 배가 아프다고 날을 새다가 몰래 도망쳐 나왔다. 거기서 먹은 것이 없어 힘도 없었다. 겨우 거기서 얻어먹은 밥 한 그릇으로 힘을 내어서 골짜기를 넘나들며 목숨을 숨겼다. 그때가 그렇게 무섭고 힘들 수가 없었다. 인민군이 의령에서 후퇴한 후에 영장을 받고 제주도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강원도로 배치를 받았다. 최전방에서 인민군들과 마주 보고 총을 겨누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고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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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나는 인자 아홉 살 묵은 기 동생 돌 지낸 기 있었는데…"
    김경자 씨는 한국전쟁 당시 겨우 아홉 살 소녀였다. 부림면 박진마을은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있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피란을 갔다. 김경자 씨는 갓 돌이 지난 어린 동생을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길에서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잡혀가 배를 곯으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낯선 동네에서 쌀을 동냥하여 죽을 끓여 먹었다. 아버지가 삼 일 만에 오셨고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마두라는 곳에서 피란을 했는데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는 전생 중에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약을 못 써 세상을 떠나셨다. 이어 할머니와 어린 동생까지 경자 씨 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고 박진마을로 돌아갔지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 없었다. 모두 불에 타 없었고.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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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옹진군 홍경애씨의 증언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옥 같은 생각이 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무고하게 죽었다. 전쟁의 잔상으로 황량해진 거리엔 죽은 엄마 젖을 빨며 철없이 엄마 시체를 넘으며 노는 아이의 모습, 전깃줄에 수두룩하게 사람 손을 묶어 끌고 가며 여자들이 뒤쫓아 통곡하던 모습, 끌고 가던 사람들을 묶은 채로 창고에 넣고 불태워 죽이던 장면, 9·28 이후에 인민군이 도망가고 땅에 묻힌 시체를 꺼내서 늘어놓았던 장면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특히 끔찍한 것은 철없는 둘째 아들이 11살이 되도록 우리 엄마는 전쟁 중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 소리이다. 함포사격을 하는 통에 피난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뛰는데 잠시 놓쳤다가 겨우 찾은 것을 그렇게 말해서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의 말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애를 버리고 간 사람도 많았고, 젖먹이 애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갓난애를 포대로 싸서 바다에 넣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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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피난민들의 고통이 담긴 현대소설, 『탈향(2012)』
    이호철의 데뷔작 『탈향』 은 6·25 전쟁 당시 부산 지역의 중구와 부산진구를 배경으로 하여 1955년에 창작한 현대 소설이다. 6·25 전쟁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한 1·4후퇴 당시, 대규모의 철수작전으로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LST에 올라탄다. 부산으로 피난 나온 친구들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궁핍하고 고단한 피난 생활을 견뎌낸다. 하지만 더욱 어려워지는 생활에 이들 사이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실향이 아닌 탈향을 통해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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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현대사의 비극을 담아낸 소설 『수난이대(1993)』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는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반전문학작품이다. 일제식민시기에 겪은 아버지의 수난과 6.25전쟁에서 겪는 아들의 수난, 이렇게 대를 이어 이 땅의 현대사가 겪어내야만 했던 역사적 비극과 그 극복의 의지를 드러낸 소설이다.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외나무다리가 등장하고 있으며, 역행적 구성, 인물들의 뚜렷한 성격 등에서 단편소설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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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삶의 부조리와 무의미함을 담론한 삼인칭소설, 『유예(2008)』
    『유예』는 오상원의 단편소설로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전쟁의 잔혹함과 함께 인간 삶의 부조리와 무의미함을 담론하는 삼인칭소설로 적진 속에서 추위와과 굶주림를 견디다 죽음에 이르고 마는 병사의 상황을 가상적 현실로 긴박감 있게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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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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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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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즉사하다.
    내가 겪은 6.25전쟁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어느 날 한 전우가 중대장이 전선을 파악하고 오겠다고 하여 나와 임무를 교대하였는데, 몇 시간 후 아군 진지에 적의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전사했다. 이후 휴전협정이 되어서야 1956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전역 특명을 받아 그리운 어머님이 계시는 고향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온다. 6.25전쟁에서의 피난생활과 군대생활, 6.25 한국전쟁 그 자체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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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유적, 포천 방어벙커
    포천 방어벙커가 있는 43번 국도는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벙커는 서부전선, 중부 전선, 동해 전선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곳에 벙커가 생긴 이유는 양문 근처는 38선이 있는 곳이기에 국경이 가까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곳은 38선 남쪽 15리 정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고, 옆은 절벽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포천 방어벙커는 전쟁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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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스컴시티와 캠프마켓
    현재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 292-1번지에 있는 44만㎡(852,495평) 규모의 땅은 바로 얼마 전까지 캠프 마켓이라는 미군부대가 자리했던 곳이다. 관할권은 2019년 12월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관되었으나 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일부 공간(B구역 야구장)이다. 국방부가 99.4%(437,258㎡)를, 산림청 등이 0.6%(2,742㎡)를 소유하고 있다. 캠프마켓의 전신은 애스컴시티(ASCOM City : Army Service Command City. 1945.9.16.〜1949.6.29, 1951.8〜1973.6.30)였고, 그 이전에는 일본이 세운 인천육군조병창 부지의 일부였다. 일본이 인천육군조병창을 설치하기 전에는 일본 육군의 부평연습장(조선군 제20사단 경리부 소속)이었고, 이전에는 굴포천이 흐르던 평화로운 부평평야의 일부였다. 이같이 평화로운 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 관할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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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지하호(富平地下壕)
    인천광역시 부평구 함봉산 자락에는 흡사 탄광이나 자연동굴로 보이는 지하시설이 여러 곳 눈에 띈다. 이곳을 부평에서는 부평지하호라고 부른다. 부평지하호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부평문화원과 관심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최근 부평지하호의 실체가 드러났다. 부평지하호가 축조된 것은 1945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다. 일제의 패망이 기정사실화 되었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연합군과 싸워 천황을 지키겠다는 몽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최후의 1인까지 천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는 이른바 1억 옥쇄의 선동 문구를 앞세워 ‘본토결전(本土決戰)’이라는 최후의 교전을 준비했다. 부평지하호는 ‘본토결전’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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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三菱) 사택
    미쓰비시 사택은 한국에 남은 미쓰비시 관련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가운데 하나이자 국내에서 강제동원 관련 기업이 남긴 대표적인 노동자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미쓰비시 사택의 모태는 히로나카(弘中) 사택이다. 히로나카상공(주) 시절에 만든 노무자 주택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로나카상공이 1942년에 미쓰비시중공업에 공장을 매각했고, 미쓰비시중공업이 미쓰비시제강으로 바뀌면서 노무자 주택단지도 미쓰비시 사택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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