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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
    1950년 6월 25일, 부산 인근 바다에서 대한민국 백두산함의 포성이 울렸다. 적함으로 추측되는 1,000톤급의 함선을 향한 것이었다. 오랜 사투 끝에 적함을 격침시킨 대한해협해전은 전쟁 초기 북한 특수부대의 상륙을 막아낸 훌륭한 성과이자, UN군이 참전하기 전 우리 손을 일궈낸 승리이기도 했다. 대한해협해전을 이끈 백두산함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이다. 함포외교로부터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의 설움을 겪은 조선인에게 전투함은 원망이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 한국 해군의 창설자인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해군 장병들이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고, 장병의 부인들이 삯바느질을 하여 모인 성금으로 백두산함을 구입하였다. 1959년 백두산함은 긴 군생활을 마치고 퇴역했다. 비록 함체는 사라졌지만, 돛대와 그 안의 정신은 해군사관학교 해사반도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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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음성군

    ‘한강의 기적’을 이끈 철강산업의 상징, 15톤 전기로
    기원전 1500년 무렵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들어진 강철은 제작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류를 산업사회로 이끌었다. 특히 미국·독일 등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철강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산업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대한중공업공사의 설립을 기점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이 생겨났고, 196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정부의 지원 아래 철강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철강산업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근간을 이루면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철박물관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 가동된 15톤 전기로가 전시되어 있다. 이 전기로는 1960년대부터 가동되었던 전기로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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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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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나의 의용경찰 생활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 내 나이는 18세의 청소년이었다. 나는 내일의 농촌 기수로서 꿈을 키우며 농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는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터라 하루의 피곤함도 보람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물론 민족의 비극인 6·25가 일어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순창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6·25가 터지기 전에 지역에서 이따금 출몰하여 약탈을 해갔던 빨치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라 걱정은 더 컸다. 이윽고 전쟁의 과정은 참혹했고, 사람들은 무분별한 전쟁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나는 이 이상 견디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인계면 지서에 의용경찰로 지원하여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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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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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국전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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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의 제주피난
    이중섭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귀포에 피난하여 머물렀다. 1평 남짓한 방이지만 네 식구가 함께 살면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현재 서귀포에는 이중섭의 피난당시 살았던 소박한 가옥과 1996년 지정된 이중섭거리가 잘 정돈되어져 있으며, 2002년 개관된 이중섭 미술관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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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한국 공군의 대부 헤스 대령 기념비
    헤스 대령은 미 공군에서 대구기지로 1950년 7월 2일 전입하여 초대 문관을 지냈고, 1951년 말까지 1일 3회 이상 출격한 조종사이다. 한국 공군이 창설되기 전 Bout One(한국 공군 창설 계획)의 부대장으로 파견되어 한국 공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훈련시켰다. 6.25 당시 그는 무려 250회나 출격한 항공전의 영웅이었고, 대한민국 공군의 대부였으며, 1천여 명의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대피시켰던 전쟁고아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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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제주출신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헌병으로 근무하다
    1930년 제주에서 출생한 고기원은 6·25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6·25가 발발한 뒤 1950년 10월 1일에 입대하여 한 달간 훈련을 받은 후 곧바로 헌병대에 배속되었다. 부산 거제리에 있는 헌병사령부 소속 107헌병대로 포로수용소 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경비병으로 근무하게 되고 7년 동안의 군 생활 대부분을 행정병으로 지낸다. 6·25당시 훈련소의 실태와 부대배치에 대한 속사정, 포로수용소 근무시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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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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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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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완주군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온 바나나
    바나나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대만산 바나나가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대만산 바나나의 절반 이상은 경성에서 소비되었는데 이것은 바나나가 사치성 과일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만의 바나나는 1928년 대만 기융(基隆)항과 조선의 인천항에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대만 현지에서는 바나나 백문(百匁)이 단돈 2전이었다. 조선에서 바나나 백문에 12-13전이었다. 해방 후에도 바나나는 인기있는 과일이었는데 1950년대 쌀이 귀하던 시절 서울에서 바나나가 날개돋힌 듯 팔려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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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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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인민군에 포위되어 7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생존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소에서 1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강원도 8사단에 야전 건설공병단에 창설병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강원도 전투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였는데 파편 2개가 다리에서 나오는 큰 상처를 입었다. 수술 후 군부대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군번은 0668900번으로 5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며 중사로 제대를 하였는데 6.25 동란 중에 겪은 고초와 고생은 말로선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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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즉사하다.
    내가 겪은 6.25전쟁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어느 날 한 전우가 중대장이 전선을 파악하고 오겠다고 하여 나와 임무를 교대하였는데, 몇 시간 후 아군 진지에 적의 포탄이 날아들어 전우 3명이 전사했다. 이후 휴전협정이 되어서야 1956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전역 특명을 받아 그리운 어머님이 계시는 고향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온다. 6.25전쟁에서의 피난생활과 군대생활, 6.25 한국전쟁 그 자체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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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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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82건)
  • 지역문화 Pick (27건)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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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불암산은 한국에서 선정한 인기명산이다. 불암산은 6.25전쟁 당시 육사생도들로 구성된 '호랑이 유격대'가 활동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 25일째였던 2기 생도들은 아직 군인이 아니었기에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생도의 신분으로 "이 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자"며 불암산에 은거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피란수도 부산을 기억하다

    출처 :부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부산 >서구

    피란수도 부산을 기억하다
    부산에 정착한 실향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시절을 생생히 조망한 다큐멘터리이다. 한국전쟁이 터지며 부산은 임시수도가 되었고 수많은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당시의 임시정부청사, 이승만 대통령 관저, 피란민이 부산에 정착하며 생겨난 일본인 묘지 마을 등을 취재하고, 부산에 정착한 실향민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가평군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경기도 가평지역에 소재한 참전 기념비, 전투 기념비, 창의탑, 위령탑 등을 담은 영상이다. 6·25전쟁의 양상과 참전용사들의 호국영웅 정신을 알아본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부산까지 소를 몰고 피란 갔다 왔다 (이완종 수기)
    6·25전쟁이 터진 해 대구 수창국민학교의 5학년생이었던 이완종은 소등에 짐을 싣고 창녕 이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을 간 창녕읍에도 포탄이 떨어져 부산을 목표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서 돌아오니, 마을 주변에는 지뢰, 수류탄 등 위험한 폭발물이 곳곳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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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포탄의 화염속에서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정홍모 수기)
    정홍모는 창녕 남산 옆에 떨어지는 포탄을 재미있게 보았다. 당시 창녕 명덕초등학교에 UN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창녕에 주둔해 있던 UN군이 갑자기 이동하고 나서 그 이튿날 창녕 읍민들에게 피란 명령이 내려 고암면의 감골재를 넘어 밀양으로 가라 하여, 피란길을 떠나 약 1개월간의 피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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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만삭이 된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장사를 하였다 (이한식 수기)
    전쟁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한식은  시모님, 남편, 세 살짜리 딸과 피난을 떠났다. 부북면 신촌 다리 밑에서 자리를 잡고, 남편은 밖에 나가면 방위병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숨어다니고 이한식은 만삭이 된 몸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입소문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니, 담만 남아있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그래도 방이었던 자리에 청소하여 바닥에 풀을 깔고 그 위에 누웠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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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피난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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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약없이 머물다 간 움막들이 벌집처럼 펄쳐져 있었다.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란은 나라에는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게 했고 우리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저 한 많은 감골재의 피난살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눈물의 고개를 만들었다.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피난민이 물결을 이룰 때 나는 창녕중학교 1학년생으로 나이 17살이었으니 제법 철이 들어있었다.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부모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간지, 미곡 두 동네 사람들과 거의 동시에 피난을 나갔으며 우리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전쟁이 남긴 피난의 여파는 그야말로 두려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포화가 멎고 우리 강산이 변한 지 반세기를 넘었고 소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도 호국영령들이 희생과 병사들이 흘린 피와 피난민들이 흘렸던 눈물이 밑거름되어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적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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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호가 넘는 마을이 2채 남고 전부 불타버렸다.
    내가 맞이한 6.25전쟁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지역은 고암면에서 가장 깊은 산골 마을이었고 지금은 감동저수지가 커다랗게 축조되어 있어 풍부한 수량이 있으나 그때는 저수지도 없었고 교통이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통신수단은 아예 없던 시절이라 전쟁이 터졌다는 소문이 동네에 들려오더니 얼마 안 있어 비행기 소리가 하늘에서 나고 전쟁의 징후가 나타났다. 창녕 쪽의 피난 행렬이 고암면 사무소 쪽으로부터 우리 마을로 밀려들어 왔으며 얼마 안 되어 감골재를 넘는 인원이 홍수처럼 넘쳐났고 갈수록 인원이 늘어났다. 내가 사는 마을은 고암면의 마지막 끝자락 감골재 바로 아래 동네, 미곡마을인데 지리적으로도 숨기가 유리하고 밀양과도 가까운 곳이라서 피난을 가기도 쉬웠다. 그래서 굳이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들과 국군이 피난을 떠나라는 독촉이 점점 심해졌고 만약 피난을 가지 않으면 이 동네를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그 유명한 눈물의 감골재를 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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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의 신발이 없어 이웃집에서 빌려 신고 시집왔다.
    6.25전쟁은 우리 부부에게 잊히지 않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때에 전쟁이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신부가 시댁의 9월제를 지내려 와야 할 판인데 신발이 없어 이웃집 어른의 신발을 빌려신고 시댁의 제례를 마치고 다시 친정으로 가야만 했다. 시댁이 불타버려서 기거할 곳이 없어 어느 정도 움막집이라도 마련해야 하고 사람을 살 수 있는 최소 여건이라도 구비 되어야 하니 그동안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했다. 나는 그 다음 해까지 걸쳐서 부지런히 집을 지어 마침내 신혼집을 마련하고 신접살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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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충청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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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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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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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평양점령(赤都平壤占領) 선두부대
    나의 소대는 베티고지 아군의 전초진지(前確陣地)에 배치되었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얼마 안 되어 육안으로도 관측할 정도였다. 밀고 밀리는 전투는 계속 되었고 피아(波我)구분이 안되어 육박전을 할 때면 서로 머리를 만져 보고 피아를 구분하면서 난투를 하는 진경은 차마눈뜨고 볼수없는 처절한 생지옥이었다. 베티고지에서 전투중 휴전을 맞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나는 92연대 인사주임및 부관을 끝으로 1964년 2월 29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평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 비운(悲運)을 가져온 6.25를 회상하고 무엇하나 우리들의 피와 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고귀한 국토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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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전투의 영웅, 김경진 육군중령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10일 동안 격전을 치루었다. 이들은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포탄이 하루 평균 5만 발 가까이 작렬하는 등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고지공방전을 치루었다. 김경진 소령은 이 과정에서 백마고지를 탈취, 확보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렇지만 김경진 소령이 고지탈환 작전 중 최후의 돌격사격을 전개하려는 찰라, 적군이 쏜 박격포탄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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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화천군

    사창리지구 전투
    사창리지구전투는 1951년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 때 국군 제6사단이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에 위치한 화악산과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제9병단 예하 제20군단의 제58•제59•제60사단 등 3개 사단과 제40군단의 제120사단 등 총 4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3일 동안에 걸쳐 전개한 방어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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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정선군

    부모가 없는 고아의 피난살이
    신원교는 1926년 정선 덕송리에서 출생하고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산속에 피란생활을 했지만 먹을 것을 챙겨다주는 가족이 없어 굶으며 생활해야 했다. 방위군으로 끌려가서 부산까지 걸어갔다. 방위군은 군복도 군번은 물론 그 어떤 혜택도 없었다. 관리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다. 전쟁 중 인민군은 민간인의 식량을 가져갔고, 아군은 그들보다 더한 횡포를 일삼았으며, 민간인들은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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