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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발사 100년을 기록한 책이다. 최근까지 신발 OEM은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였고, 그 중심지는 부산 진구였다. 고무신에서 시작해 고급운동화 제조 세계 1위로 등극했던 부산의 기록이자 한국 신발사 100년의 기록을 알아보자.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F1963은 고려제강의 부산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1963은 고려제강의 부산 공장의 창립연도, 알파벳 F는 Factory에서 따왔다. 45년 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던 수영공장이 2008년 문을 닫은 후 방치되었던 부지와 건물을 조병수 건축가에게 맡겨 새단장했다. 2018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받은 F1963에는 댓잎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소리길, 공연장 석천홀, 오페라와 영화 등이 상영되는 F1963 스퀘어, 생태정원, 유리온실, 달빛정원, 전망이 좋은 F1963 브릿지가 있어 부산의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제시장 근처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과서나 미군부대의 영어책 같은 것들 사고팔던 것이 확장되어 헌책방 골목이 되었다. 피난민들이 보수동 뒷산 노천에 천막을 지고 수업을 하며 학교를 만들었고, 자연스레 보수동 골목길은 학생들의 통학길이 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70여 개의 책방이 있었고, 신학기의 학생들 뿐 아니라 고서 수집상들과 희귀본 수집가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2005년부터 책방골목에서 축제를 열기 시작했고, 8층짜리 문화관도 생겼다.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2004년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사재 1억원을 털어 세운 공간이다. 1990년 이래 부산정대협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한 투쟁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그녀의 일대기는 2018년 '허스토리'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전시관은 크게 2개로 나뉘는데, 제1전시관에는 시모노세키 재판에 대한 자료와 위안부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관은 매년 테마에 맞춰 기획전을 연다.
고분도리 걸립은 정월 초에 벌이는 세시풍속으로 풍물패를 조직해 집집마다 다니며 복을 빌어주는 지신밟기 형태의 놀이다.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생기게 해달라고 성주신께 기원해주는 대신 쌀이나 돈을 조금씩 받는 까닭에 걸립굿이라 불린다.
농청은 두레에서 나온 농촌의 공동 노동 조직으로, 마을 사람들은 농청의 엄한 규율 아래 농사일은 물론이고 길을 고치거나 풀을 베는 등의 고단한 활동을 했다. 이에 노동의 피로를 달래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가래소리ㆍ풀베기소리ㆍ모심기소리 등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수영 농청놀이다.
동래 지신밟기는 부산 동래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이다. 새해를 맞이해 정월 정초에 마을과 집터에 머물러 있는 지신(地神)을 진압하여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빌며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적인 놀이다. 1977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좌수영 어방놀이는 부산시 남구 수영동에서 전승되어온 어업의 작업과정과 노동요를 놀이화한 민속놀이다. 새해를 맞이해 바다로 나가기 전, 굿을 하고 놀이를 벌여 고기를 많이 잡아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안눌의 시를 새긴 목관과 바위가 있다. 이안눌이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더위를 피하고자 범어사의 혜정 스님 처소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당시 혜정 스님이 바위에 새길 시를 요청하였고 이안눌이 2수의 시를 지었다. 2수의 시는 범어사 청룡암에 새겨졌으며 목판도 제작되었다. 동래부사로서 이렇게 시를 남긴 사람은 이안눌이 유일하며, 이안눌의 시가 부산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부산광역시는 1876년 개항으로 근대 항만도시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권이 관철되는 식민지근대로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에 설치됐던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일본은 시가지를 형성하고, 부산항을 건설했다. 현재 부산시 중앙동, 남포동, 광복동, 초량동 일대 원도심은 일제강점기 동안 계획도시와 자연발생적 면모가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해 나갔다. 1925년에는 경상남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왔다. 해방 후 부산은 귀국 동포와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몸살을 앓았다. 원도심 시가지 북쪽 산은 중턱 위에까지 판잣집이 대거 들어섰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정부는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부산을 임시 수도로 하여 버텼다. 현재 부산 원도심에는 개항기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부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취들이 남아 있다.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맨발동무도서관은 '사립' 공공 도서관이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 만든 이 마을 도서관의 이름은 시인 권태응의 시 '맨발 동무'에서 따왔다. 누구나 맨발로 찾아와도 편한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 맨발동무도서관은에는 만화책만 있는 방, 그림동화책만 있는 방, 숨어서 독서할 수 있는 나무집 등 재밌는 공간이 많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4시면 책 읽기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송공단에는 의로운 기녀 금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금섬 순난비가 있다. 금섬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기녀로 송상현의 첩이 되어 동래부사로 부임하는 송상현을 따라 부산에 갔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동래성을 공격하자 송상현은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다. 금섬이 송상현을 찾아 동래성을 갔을 때 이미 송상현은 순절한 후였다. 금섬도 왜군에게 잡혔으나 사흘을 꾸짖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의로움을 기특하게 여긴 한 왜적 장수에 의해 송상현과 함께 묻히게 되었다. 이러한 금섬의 의로움이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전해지고 있다.
『해운대 석각』은 신라 후기 학자 최치원이 부산 동백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하여 바위에 새긴 흔적이다. 해운은 최치원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명소에 정자를 짓거나 별장을 두고 자연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도 했지만 바위 등에 시나 이름을 새겨 흔적을 남기는 ‘석각문화’가 존재했다. 이러한 문화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여 우리나라에 널리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 최치원이다. 『해운대 석각』은 동백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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