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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서울 >은평구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던 연행길
    조선 시대에는 정기 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명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조천이라 했으며, 청나라로 가던 길은 수도인 연경(燕京)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연행이라 했다. 연행길에는 30여 명의 공식 사절단과 함께 4~5백 명의 수행원이 뒤따랐다. 연경에 한 번 다녀오는 기간은 6달 이상이나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근대 이전 나라 밖으로의 여행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고려하면 조선 시대의 연행은 나름의 세계여행에 빗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동 경로는 한양에서 출발하여 평양과 의주를 지났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서면 봉황성-요양-심양-백기보-광녕-영원위-산해관-풍윤현-계주-통주를 지나 북경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한양으로 오던 사신들도 이 길을 따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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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일제강점기부터 꿩 대신 닭
    닭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길렀지만 닭고기는 많이 먹지 않았다. 주로 달걀을 위해 닭을 길렀기 때문이다. 고기를 위해서는 꿩을 먹었는데 이러한 전통이 일제강점기에 변화한다. 이 시기 달걀의 대량생산을 위해 농가에서 닭을 많이 사육하게 된다. 달걀이 많이 생산되고 이 달걀의 일부를 병아리로 만들면 달걀을 못낳는 수탉이 많이 나왔다. 잉여의 닭이 늘어나면서 1920년대 음식점 메뉴로 연계탕이 나타난다. 연계탕에 인삼을 넣은 것이 삼계탕인데 이것이 오늘날 여름 보양식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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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세월이 전해주는 맛, 인천 중구 ‘인현통닭삼계탕’
    인현통닭삼계탕은 1978년 현재의 위치에서 김영길·이영자가 문을 연 삼계탕·전기구이통닭 전문점이다. 김영길·이영자는 인현통닭삼계탕을 개업하기 전 쌀과 연탄을 판매하는 가게를 인천광역시 동구 화평동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영분식’, ‘연탄고기’ 등으로 업종을 변경하였고, 1978년 삼계탕·전기구이통닭 가게를 열었다. 1980년대 사위인 강지용이, 2018년부터는 강지용의 아들인 강효종이 가게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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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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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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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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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계양구

    인천 계양구 방축동 지명유래
    방축동은 '방죽말’이라고도 한다. 계양산 주봉이 동북쪽으로 흘러 형제봉을 일으키게 되면, 계양산 줄기의 고성산, 독산의 줄기 사이에 골짜기가 생긴다. 이 골짜기의 동쪽을 ‘방축안산’이라는 작은 산을 이용해 막으면 방죽이 생겨 천수답에 물을 댈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 생기고 방축리라고 불렸다. 말의 등성이같이 생긴 곳에 마을이 생겼다고 해서 ‘말번뎅이말’이라고도 불려오고 있다. 금계와 같다는 ‘금계봉’, 도당굿 터가 있는 ‘도당산’, 쇠물을 녹여 창검을 만들었다는 ‘검노지산’이 방축동 경계안의 봉우리들이고, 중골, 황쇠골, 멱골, 쇠웅골 등의 골짜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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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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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적멸보궁의 상징 통도사 금강계단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해 조성된 금강계단은 통도사 창건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 기록에 ‘계단은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라는 기록을 통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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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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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혼례를 도와주는 마음, 부조
    혼례를 치르는 과정에 필요한 걸 도와주는 것을 부조라고 한다. 부조를 위해 혼사계를 만들어 쌀을 모으고, 그걸 모아 떡을 하거나 돼지를 잡기도 했다. 예전에 부조는 곡물이나 감주, 술 같은 현물 부조였다. 국수 한 묶음이나 계란 한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부조가 현금으로 변한 이유는 1980년대 후반 예식장이 등장하면서 ‘축의금 접수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조가 현금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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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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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 달성군

    용연사 석조계단
    보물 제539호 용연사 석조계단은 본래 동화사 말사인 용연사는 신라 하대 신덕왕 3년(914) 보양(寶壤)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다. 용연사 석조계단은 불사를 봉안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한 것으로 통도사에 있던 부처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 이곳에 통도사 사리를 봉안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부터다. 당시 승장 유정이 왜구를 피해 제자 청진(淸振)으로 하여금 통도사 사리를 용연사에 봉안하게 한 것이다. 용연사 경내에 세운 사바교주석가여래부도비명 기록을 통해 광해군 5년(1613)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54년 세워진 용연사사적비와 석가여래중수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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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김천시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추풍령 옛길
    추풍령은 해발고도가 221m에 불과해 고도가 낮은 고갯길이지만, 죽령, 조령, 이화령과 함께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4대 고개였다. 추풍령은 조선 시대에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관용도로였지만, 문경새재보다 규모가 작았고 명성도 높지 않았다. 경부선 철도가 추풍령을 통과하고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지나면서부터 교통의 요지로 부상했다. 추풍령 옛길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추풍령은 교통의 역사성과 문화적 접경, 백두대간의 중간 기착지라는 특징을 가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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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문무를 겸비한 큰 호랑이, 김종서
    김종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월곡리에서 태어나, 과거급제 후 세종이 즉위하는 동안 왕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였다. 1433년(세종 15)에는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어 6진을 개척함으로써 두만강을 국경으로 확정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문종 때는 우의정이 되었지만 이듬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문종이 사망하였다. 어린 임금인 단종이 즉위하자 그는 좌의정이 되어 임금을 보필하였으며,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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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이천시

    모든 일에 공명정대했던 김길통
    김길통은 생전에 계유정난을 목격하고 선비정신의 표상을 지부상소를 올림으로써 보이고 사육신과 생육신의 산 증인으로서 계유실록을 남겨 후대의 귀감이 되었다. 그만큼 김길통의 성품이 충직하고 정의로웠으며 민의를 널리 듣고 학문을 널리 펴서 만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였다 하여 문평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청풍김씨로 문자가 들어가는 시호를 받은 것은 김길통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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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의 전성기를 같이 한 중국요리집
    인천에 중국인들이 살 수 있는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인천에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요리집이 많이 생긴다. 일제강점기 인천의 유명한 중국요리집으로 중화루, 공화춘, 동홍루, 평화각 등이 있었다. 이들 대형 중국요리집은 주로 중국 산동성에서 이주한 중국인들 몇십 명이 돈을 각자 출자하여 만든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인천의 중국요리집들은 장사가 잘 됐는데 이 시기 인천부청에서 작성한 과세자료에 의하면 중화루 40,000원, 동흥루 20,000원, 공화춘 9,000원의 세금을 징수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이 누렸던 각종 이점이 모두 서울로 이동되었다. 그에 따라 인천에 소재한 중국요리집들도 자연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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