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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운전사'는 음악창작사 '더 율'이 인천 남구 민요 현대화 프로젝트로 제작하여 시범 공연한 음악극이다. 50대의 택시 운전사가 남구의 5개 동네(도화동, 숭의동, 용현동, 주안동, 문학동)를 운전하며 접하는 숨은 동네 이야기와 동네 주민의 사연과 추억을 노래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문학산(文鶴山)이 있다. 문학산 정상 봉수대가 있던 자리 아래에 ‘안관당’이라 부르는 사당이 있었는데, 김민선(金敏善) 부사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었다. 이 사당에 얽힌 설화가 전해내려온다. 안관당에 나무로 깎아 만든 할아버지와 할머니상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들을 마을신으로 모셨다. 그런데 한 부인이 안관할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흉을 보았다. 그 후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생긴 것이 안관할아버지 목상처럼 생겼으며, “씨익, 씨익.”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앞쪽의 옛건물 사이 골목길에 숭의평화시장이 있다. 1980년대 이곳은 북적이는 동네 시장이었지만,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그러다 2015년 인천시와 미추홀구에서 빈 점포 6개동을 창작공간으로 만들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옛 가게와 새로운 창작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은 현재 숭의평화예술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영희는 한국의 민속음악을 보존하고 계승하여, 국악의 근대화를 이룩한 위대한 음악가이다. 지영희는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으로 거의 모든 전통악기에 통달한 뛰어난 연주자였고, 또한 작곡, 채보, 연구, 지휘, 교육 등 국악의 전 영역에서 큰 족적을 남긴 종합예술인이다. 지영희 덕분에 악보없이 전해지던 민요가 오선보에 기록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을 만들기도 했다. 지영희는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며 점차 사라져가던 민속음악의 유산을 되살리고 현대적으로 재건하는 데 온 생애를 바친 음악인이다.
조선이 개항하고 인천 만석동 일대에 포구를 열었다. 남쪽은 각국의 묘지로, 북쪽에는 조선인 마을을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북성포구는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몰려와 똥마당이라는 오명을 덮어 쓰기도 했지만 1960년대부터 좋은 생선과 새우젓을 구입할 수 있는 파시가 열렸다. 지금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상파시가 남아있는 곳이다. 만석부두 역시 피란민들이 만든 굴막으로 유명했으며, 1970년대 초반까지도 인천 앞바다 여러 섬을 오가는 여객선들의 출발지였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살던 주민들이 잠시 피난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았던 곳이 강화읍 교동도이다. 교동도 북단 율두산의 망배단은 실향민들이 명절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곳이다. 이들이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리워하며 꾸린 곳이 대룡시장이다. 이발소, 잡화점, 신발집, 약방 등 시간이 멈춘듯한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영업 중인 곳이기도 하다.
강화 고대섭 가옥은 ‘미음(ㅁ)’자 형태의 반가(班家)로, 집의 크기는 99칸〔間〕이다. 일반 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집 크기다. 강화 고려인삼을 경작하고 인삼무역을 했던 고대섭은 개성의 집을 본 따 황해도의 자재로 전통 한옥과 일식을 결합한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이 집에는 지하 난방시설, 쇠솥이 있는 목욕시설 등 독특한 시설들이 있다. 2020년부터는 한옥스테이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용흥궁(龍興宮)은 1853(철종 4)년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의 건물을 세웠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기와집으로 확장하고 왕의 잠저(潛邸)로서 용흥궁이라 명명하였다.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고, 1903(광무 7)년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다.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은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와 배를 연결하여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이후 40여 개의 헌책방이 성업한 헌책방 골목이기도 하다. 이곳에 산업도로가 마을 중간을 관통해 지나가려는 국책사업이 시작되었고, 마을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동네 주민에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이 합세해 도시재생이 시작되었고, 결국 산업도로는 지하로 지나가게 되었고, 배다리마을은 큰 위기를 넘겼다.
청황패놀이는 인천 중구 원산도(간척사업으로 육지로 변함)에 전해오는 놀이로, 옛날 인천도호부가 원산신께 풍요와 풍농을 비는 의례를 유희화한 것이다. 청황패(靑黃牌)의 청(靑)은 바다를, 황(黃)은 땅을 상징하며 패(牌)란 무리라는 뜻이다. 농업패와 어업패로 나눠 겨루지만, 지역민들이 대게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는 생활을 하는 까닭에 승패 없이 끝난다는 특징이 있다.
인천 편사놀이는 활터끼리 서로 편을 갈라 활을 쏘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인천에는 19세기 중반 설립된 무덕정이라는 오래된 활터가 남아있다. 활을 쏘는 동안 경기민요가 계속 흘러나오고, 놀이가 끝난 후에는 춤판이 벌어지는 등 인천편사놀이는 개인의 기술을 겨루는 장에 그치지 않고 모두가 어울리는 축제 한마당으로 벌어졌다.
중림도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인천의 중림역을 중심으로 한 역로이다. 중심이 되던 중림역에는 종9품인 역승이 소재했다가 이후 종6품인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시대에 설치되었던 청교도와 광주도의 일부 역을 계승해서 만들어졌다. 1457년 중림도에 속했던 모든 역은 경기 충청우도 정역찰방에 속했다가 전국의 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1460년에 경기좌도에 편제되었다. 중림도에 속했던 역은 모두 소로 또는 소역에 속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인천광역시 남동구, 경기도 시흥시·안산시·김포시가 포함되는 범위이다.
소래포구축제는 인근의 소래습지생태공원과 연계하여 2001년부터 개최하였다. 인천광역시 소래포구는 예전부터 김장철이 되면 새우젓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어 인천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즐겨찾는 재래 어시장이자 관광명소이다. 소래포구축제는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재래어항을 가지고 있는 특장점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으며 '바다로, 포구로, 소래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소래포구의 멋진 노을, 풍부한 수산물 먹거리, 다양한 콘텐츠가 어우러진 인천광역시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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