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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김제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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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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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옥동자가 태어난 김제 옥쇄골
    신행을 가던 신부가 산통이 왔다. 가마꾼들은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옥쇄골에 가마를 내려놓고 쉬도록 했다. 그 사이 신랑과 산파가 도착하여 신부는 무사히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옥동자는 자라서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힘을 보탰고, 가문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후 마을에서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옥동자가 태어난 마을이라고 해서 옥새골[玉璽골] 또는 옥쇄골[玉碎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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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남동구

    3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호구포(虎口浦)’라 불리는 포구가 있었다. 호구포는 포구의 형상이 호랑이 입처럼 생겼기에 불리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호구포 뒷산인 오봉산 기슭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의 바위가 있어서 호구포라 불렀다고도 한다. 호랑이 형상의 바위인 호구암 맞은편 산기슭에 묘를 쓴 세도가에서 대가 점차 끊기자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호구암이 향하는 대부도에서는 마을에서 키우는 개들이 번식되지 않는 것도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다.
  • 2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남동구

    2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호구포(虎口浦)’라 불리는 포구가 있었다. 호구포는 포구의 형상이 호랑이 입처럼 생겼기에 불리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호구포 뒷산인 오봉산 기슭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의 바위가 있어서 호구포라 불렀다고도 한다. 호랑이 형상의 바위인 호구암 맞은편 산기슭에 묘를 쓴 세도가에서 대가 점차 끊기자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호구암이 향하는 대부도에서는 마을에서 키우는 개들이 번식되지 않는 것도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다.
  • 1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남동구

    1화 호랑이 형상의 바위 때문에 생긴 인천광역시 남동구의 호구포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에 ‘호구포(虎口浦)’라 불리는 포구가 있었다. 호구포는 포구의 형상이 호랑이 입처럼 생겼기에 불리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호구포 뒷산인 오봉산 기슭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의 바위가 있어서 호구포라 불렀다고도 한다. 호랑이 형상의 바위인 호구암 맞은편 산기슭에 묘를 쓴 세도가에서 대가 점차 끊기자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호구암이 향하는 대부도에서는 마을에서 키우는 개들이 번식되지 않는 것도 호구암 때문이라고 하였다.

#대전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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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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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중구

    며느리가 꽃적을 구워 시아버지를 공양했던 대전 꽃적골
    옛날 대전광역시 중구 꽃적골에는 한 노인이 며느리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며느리가 품을 팔아 시아버지를 공양했는데 어느 해에 가뭄이 들어 품을 팔 수 없게 되자 산에서 꽃을 따다 적을 구워 드렸다. 이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노인은 금쟁반을 묻은 장소와 여승이 찾아올 것이라 이야기하고 돌아가셨다. 이후 여승이 찾아오자 며느리는 금쟁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여승은 금쟁반과 사라지고 며느리는 돌부처로 변했다. 이후 사람들은 돌부처를 미륵님이라 부르고, 이 마을을 꽃적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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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중구

    사냥꾼이 새끼호랑이를 키운 마을, 대전 범골
    대전광역시 중구 호동에서 대명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범골이라고 한다. 옛날 범골에 재주 좋은 사냥꾼이 살았다. 하루는 친구 병문안을 갔는데, 친구의 병이 호랑이 앞다리를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사냥꾼은 친구를 위해 호랑이를 잡아 줬다. 그런데 죽은 호랑이가 어미였던 까닭에 새끼호랑이가 사냥꾼 집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냥꾼은 새끼호랑이를 데리고 굴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사냥꾼이 호랑이와 함께 살았던 곳이라 해서 범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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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동구

    어진 임씨부인의 명당 묏자리, 대전 구도리
    대전 동구 구도동에는 옛날부터 천하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져 전국의 내로라하는 풍수들이 찾아왔으나 찾지 못했다. 그런데 승지를 지낸 송국보의 둘째부인 임씨가 살림을 야무지게 하고, 가정은 물론 이웃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중 임씨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죽으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안산에 묻히고 싶다고 해 거기에 묻었는데, 나중에 풍수들이 그곳이 명당자리임을 알아봤다. 거북이 머리 형국의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이후 마을 이름을 구두(龜頭)리라고 불렀는데, 구전되면서 쉬운 발음으로 구도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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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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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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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은혜갚은 한조, 한골
    옛날 논산시 은지면 방축리에 김 부자가 살았다. 그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어느 날 곡광에 둥지를 튼 한조를 돌봐준 김부자는 새끼 한조까지 부화해서 보내주었다. 그 후 김부자는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한조가 날아와 약그릇에 열매 하나를 떨구고 갔다. 그 열매가 든 약을 먹은 김 부자는 완쾌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조가 김 부자를 살렸다며 김 부자가 사는 마을을 한조골이라 불렀고, 이것을 줄여 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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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고흥군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곳곳의 이야기와 남아있는 옛 공동우물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의 동백마을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동백마을 뒤에는 삼국시대 석성인 백치성이 있고,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있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정자와 마을의 생명줄이 되어준 공동우물이 남아있어, 동백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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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고흥군

    두 마리 용이 싸운 고흥군 영남면의 용추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에 ‘용추’와 ‘용바위’가 소재해 있다. 옛날 용추에서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 서로 싸웠다. 그 무렵 고흥에 사는 류시인의 꿈에 싸우는 두 마리 용 가운데 한 마리를 활로 쏘라고 하였다. 류시인은 마을을 바라보고 싸우는 용을 활로 쏴서 떨어뜨렸다. 이때 화살 맞아 바다로 추락한 용이 화가 나서 용추골 해변 일대를 큰 꼬리로 쳐 돌이 무너져 내렸다. 한편, 마을을 등지고 싸우던 용은 용바위를 발 받침으로 해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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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고흥군

    땅에서 피가 나온 고흥군 동강면의 비낏골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 ‘비낏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비낏골은 마륜리 원등마을에서 마치마을에 이르는 약 3㎞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비낏골에 숲이 울창하고 호랑이까지 나온다는 소문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다. 다른 마을에 살던 한 건장한 청년이 비낏골에 집터를 잡고 살기 위해 들어왔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파기 시작하였는데, 피처럼 보이는 흙이 나와 도망을 쳤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중요한 길목인 비낏골에서 조선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많아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한다. 아울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수군 가운데 고흥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 정유재란 때 왜군이 조선에 들어와 먼저 고흥 두방산 줄기에 못을 박았는데, 그때도 땅에서 피가 나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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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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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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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스님들이 넘어 다니던 충북 청주의 구중고개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1동에 속해 있는 법정동인 용정동에 ‘구중고개’ 또는 ‘이정골고개’라고 부르는 고개가 있다. 옛날 청주시에 소재한 낙가산 보살사를 오르내리던 스님들이 넘어 다니던 고개였다. 그러나 한 스님과 젊은 처녀가 목을 매어 자살한 이후부터 주지 스님인 보현스님이 고개를 넘어 다니는 것을 금지했다. 그 후 스님들이 넘어 다니지 않게 되어 옛 구(舊)를 써서 ‘구중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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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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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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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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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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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효심깊은 며느리가 파낸 솥, 가평 솔틀마을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하천리 솔틀마을에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정성으로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신 가난한 집의 며느리에게 산신령이 솥을 주었는데, 그 솥으로 인해 살림이 불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기다. 이를 안 원님이 그 집을 더 도와주고 그 마을이름을 솔틀[鼎谷]이라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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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산신령이 준 구들장으로 집을 완성한 가평 돌아우
    경기도 가평군 상면 상동리 서리골에는 돌아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평생 방랑하던 노인이 마지막 소원으로 상동리에 정착하고자 집을 지었으나 구들장을 구할 수 없었다. 평생을 떠돌고 마지막 정착지마저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한 노인이 자살을 결심하고 벼랑에 섰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서 구들장을 주었다. 노인은 집에 구들장을 놓고 정착해서 잘 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마을을 돌아우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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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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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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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남구

    우물 세 개가 있는 대구 삼정골
    대구광역시 남구 봉산 3동에는 삼정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우물 두 개가 있었는데 마을 주민이 차츰 늘어나면서 그것으로는 식수를 해결할 수 없었다. 새로 우물을 파려고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을 연장자가 산신령에게 100일 기도를 올리고, 100일이 다 되어 갈 때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숭늉물에 먹을 풀어 양동이에 담은 후, 한밤중에 별 세 개가 비치는 곳을 찾아 파보라고 했다.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하자 마침내 차고 맑은 우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기존 우물 두 개에 새로운 우물 하나를 더해 우물 세 개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정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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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남구

    문수보살이 사라진 울산 무거동
    신라시대는 시집을 가기 전 스님과 하룻밤을 함께 하는 풍습이 있었다. 시집갈 딸을 둔 남자가 못생긴 스님을 만나 집에 가줄 것을 청했다. 스님은 자신을 따라올 수 있으면 가겠다고 했다. 남자는 스님을 뒤쫓았으나 곧 다리가 무거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문수보살이었으며 다리가 무거워진 그곳을 무거동이라 불렀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경순왕이 문수보살을 만나 지혜를 얻고자 했으나 동자승으로 화한 문수보살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문수보살이 사라진 곳은 일러 무거동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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