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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신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옹진군

    인천 대청도 당제

    서해 오도를 대표하는 대청도 주민들이 마을에 모셔진 임경업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을신앙이다.대청도의 대표적인 포구인 선진동에는 임경업 신이 모셔진 당집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대청도에 속한 선진동 마을에 임경업을 신을 모시게 된 연유는 이 지역이 일찍부터 조기잡이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를 모시면 조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기에 정확한 역사는 알지 못하지만 마을주민들은 임경업을 마을신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당제는 매년 음력 9월에 초에 지내며, 제사는 해가 뜨기 전에 행한다. 당제를 지낼 때는 생기복덕을 살펴 거기에 잘 맞는 사람이 당주가 된다.대청도 마을에서는 과거에 제의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제물을 구입하기 위해 배를 띄워 육지까지 가서 구입을 해왔다. 제의를 지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제물에는 소와 삼색과일, 나물 등이다. 선진동 마을 주민들이 마을제의를 지내는 이유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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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매당왕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화주당에서 모시는 주신(主神)의 다른 이름이다.화주당에서는 매당왕신이라고도 부르는 이회장군과 그의 부인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다. 과거 화주당은 ‘뚝섬 화주당’ 또는 ‘충렬(忠烈) 화주당’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강 변의 언덕에 있었다. 서울의 많은 당이 대부분 자리를 옮겼던 것처럼 화주당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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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경업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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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옹진군

    임경업 신

    임경업(1594 ~ 1646)은 조선중기의 장군이다. 그런 그가 서해안 여러 지역의 마을신으로 모셔져 있다. 그 이유는 조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가 병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가는 길에 연평도 근천에서 병사들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가시나무를 꺾어 바다에 던졌더니 조기가 잡혔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임경업의 사후에 서해안 주민들은 그를 마을신으로 모셔 조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갈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가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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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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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경산시

    한장군신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지역을 중심으로 모셔진 한장군신은 지역에 왜적의 침입을 막아주기 위해 노력하다 목숨을 잃은 연유로 지역의 신으로 모셔져 있다.한 장군이라는 명칭에서 추정할 수 있듯 한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보이는데 정확히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는 알기 어렵다. 경상남도 경산시에 속한 자인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르면 한장군은 왜적이 마을에 침범하여 백성들을 괴롭히자, 여자로 가장한 뒤에 누이와 화관을 만들어 쓰고 광대들의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이른 지켜본 왜적들인 숨어 있던 산에서 내려와 공연을 보고 넋을 잃었다. 그때는 놓치지 않고 한장군과 광대들은 숨겨둔 칼을 들고 왜적들을 공격하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왜적들은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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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꼼짝못한 남이장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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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이장군신

    귀신을 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남이장군은 용문동 지역을 중심으로 신으로 모셔져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부분도 있지만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영험한 부분으로 인해 그를 마을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남이 장군이 다른 지역이 아닌 용문동 지역의 마을신으로 모시고 있는 부분은 지역과의 연계성이다. 남이장군 사당이 약 300년 전 용문동에 세워진 것 역시 남이장군이 처음 출진(出陣)할 때 군졸을 뽑아 훈련시킨 곳이 용산 부근이었으며, 또 장군이 처형된 곳이 용산 부근인 새남터였기 때문이라 전해지고 있다.남이가 신으로 모셔질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은 그가 매우 용맹하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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