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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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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청각의 별당 정자, 안동 군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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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의 별당 정자, 안동 군자정

    군자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법흥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82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명이 건립한 양반가옥인 임청각의 별당으로 지어진 정자로 1519년(중종 14)에 건립되었다. 임청각은 안동의 고성이씨의 종택으로 초기에는 99칸의 대저택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안동지역의 정기를 끊기 위해 설치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도가 임청각을 관통해 지나감으로써 정문·행랑채·누대 등 36칸이 철거되어 현재는 50칸 정도 남았다고 한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한 그의 아들·손자 등 삼대에 걸친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다. 군자정은 이 임청각의 별당으로 지어져 사랑채 역할을 하였다. 군자정 앞에 연꽃이 심어진 연못이 있어 정자의 이름을 군자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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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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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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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성리학

    성리학은 중국 송대에 유교사상을 주로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체계화한 학문으로 신유학(新儒學)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은 원래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이기론은 모든 사물은 모두 리와 기로 되어있다고 보는 입장으로, 사물의 물질적인 측면은 기에 결부시키고 그 생성변화의 원리나 존립근거 등은 리에 결부시킨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은 주희로 사서의 정립을 통하여 공자(孔子)·증자·자사(子思)·맹자(孟子)라는 유학 도통의 계보를 세웠다. 또한 주희는 사서에 주(註)를 달았는데 이는 나중에 성리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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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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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상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 형이상하

    형이상과 형이하는 『논어』의 「계사전」에서 "형상 이전의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상 이후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형이상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초월한 정신적인 도를 가리키고, 형이하는 형상을 가진 물질이나 그런 속성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형이상은 사물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본모습이며, 형이하는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을 뜻한다. 이를 토대로 도기(道器)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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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예술인들이 모인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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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인제군

    일제강점기 예술인들이 모인 다방

    우리나라에서 다방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국가기관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에도 다방은 국가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1920년대부터 다방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서울에 많은 다방이 생겼다. 조선인을 상대로 하는 다방은 예술가들이 많이 개업했고, 그런만큼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낙랑팔라’는 화가 이순석의 아틀리에를 겸한 다방이었고, 시인 이상도 '제비' 등 여러 다방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다방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해방 후 196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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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적 이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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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구미시

    사림의 정계 진출과 사화의 씨앗이 된 김종직

    김종직과 그의 문인들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영남 사림을 형성하였고, 훈구파를 견제하려는 성종의 등용 정책으로 조정에 들어가 사림파를 형성하였다. 김종직은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로부터 시작되는 학통의 계보를 이어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고, 사림이 정계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견제 없는 권력을 추구하려던 훈구파와 군주의 심기를 건드렸고,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는 사림들의 화(禍)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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